오에 겐자부로 작가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3.04.2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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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오에 겐자부로의 생애와 작가 활동
2. 오에의 문학적 구분
3. 오에 겐자부로의 초기문학
4. 個人的な体験
5. 정치적인 경향
6. 실존주의적 작가
본문내용
1994년 인도의 타고르, 일본의 카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아시아에서는 3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는, 일본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깨뜨리는 듯한 거칠면서도 단조로운 문체로 일본 전후 세대의 반항을 간결하게 묘사하였다.
부유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전후의 농지개혁으로 사유재산을 거의 잃었다. 1954년 도쿄대학[東京大學] 프랑스 문학과에 입학해 1959년에 졸업했으며, 재학시절 문필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이래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60년에는 중국 베이징[北京]에 가서 일본 젊은 작가의 대표로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나기도 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그가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 〈분가쿠카이 文學界〉라는 문예잡지에 〈죽은 자의 사치 死者の奢り〉(1957)가 실리면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창작 활동은 평탄하지 않았다. 〈사육 飼育〉(1958)으로 주요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했으나, 2번째 장편 〈우리들의 시대 われらの時代〉(1959)는 오에가 점차 사회·정치 비판에만 몰두해가는 느낌을 풍긴다는 악평을 받았다.
오에는 차츰 신좌익 정치사상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1960년 한 우익 청년이 일본 사회당 당수 아사누마 이네지로[淺沼稻次郞]를 암살한 사건에 자극을 받아 1961년 〈세븐틴 セヴンティ-ン]과 〈정치소년 죽다 政治少年死す〉라는 2편의 단편을 썼으나, 후자는 우익 단체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다. 1960년에 결혼했는데 1963년 뇌가 비정상인 아들이 태어났다. 이 불행한 체험을 소재로 하여 〈개인적인 체험 個人的な體驗〉(1964)이라는 장편을 써서 1964년 신초샤[新潮社] 문학상을 수상했다. 여기에서 그는 기형아 출생을 주제로 삼아 인권을 유린당한 전후세대의 문제를 파헤쳤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하여 〈히로시마 노트 ヒロシマ·ノ-ト〉(1965)를 썼다. 1970년대 초반의, 특히 에세이를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에는 핵시대의 힘의 정치에 대한 우려와 3차대전에 대한 의문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