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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4.26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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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내고장 탐구(우리고장 탐구)와 옹진군
Ⅱ. 내고장 탐구(우리고장 탐구)와 홍성군
Ⅲ. 내고장 탐구(우리고장 탐구)와 장성군
Ⅳ.내고장 탐구(우리고장 탐구)와 영주시
1. 명현이 영주 고장에 모이게 된 동기
1) 불사이군의 의리가 강한 인물
2) 효성이 강하여 벼슬도 버리고 부모를 모신 인물
3) 후학을 키우기 위해 정착한 인물
4) 당파의 세도에 굽히지 않는 인물
2. 고장에서의 활동
Ⅴ. 내고장 탐구(우리고장 탐구)와 인천시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내고장 탐구(우리고장 탐구)와 옹진군
옹진군에 있는 백령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구려 때 곡도라 불렀고 고려 태조가 지금의 백령으로 고치고 현종 9년(1018)에 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공민왕 6년(1357)에 해적들의 출몰로 주민들을 이끌고 백령진이 황해도 문화현으로 이주하였다가 조선조에 들어와서 세종 10년(1428)에 국영목장과 진을 설치하고 주민을 입주시켰다. 그 후 진의 운영이 유명무실하게 되자 광해군 원년(1609)에 진을 다시 설치하여 조선조 말까지 존속되다가 1884년 폐진 되고 장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경기도 옹진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중 략>
불의를 미워하고 정당한 권력이 아니면 굴하지 않으며 인의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청렴과 결백으로 살아온 이들이 이 고장에 선비 정신을 심어 행동화했다.
나라에는 충성을 다하여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나라가 위급할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기에 온 힘을 다 바쳤으며, 한일 합방 때도 독립군을 조직하여 국내외에서 활동했다. 또한 권력이나 세도가가 바르지 못한 일을 했을 때 지체 없이 꾸짖고 나무랐으며 권력이나 세도로 억눌러도 굽히지 않고 정의롭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정신을 이곳 후손들에게 심어 주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존경하는 효도와 예의를 숭상하고 이를 실천하는 행동을 보였다. 효도와 독행으로 정려문과 정려각, 효자각과 열녀각이 골골이 새워졌으며, 그에 따른 전설 비화도 수 없이 많으며 후학을 가르치기 위한 향교, 서원, 서당도 곳곳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이 고장 선인들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경기도교육위원회, 도서지역학교 의 해양탐구 교육 옹진군 용유중학교, 경기도교육청, 1985
국가기록원 특수기록관리과, 내고장 역사찾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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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환, 민원행정 질 개선 사업 성과평가 : 영주시를 중심으로, 안동대학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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