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유관록
- 최초 등록일
- 2013.04.29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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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시(巳時)에 태학(太學)에 들었다. 사시 이전의 일은 이미 길에서 적었고, 사시 이후의 것은 관(館)에 머무른 일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날 몹시 더웠다. 말에서 내려 곧 후당(後堂)으로 들어섰다. 한 노인이 모자를 벗고 교의에 걸터앉았다가 나를 보고 교의에서 내려,
“수고하십니다.”
하며 맞이한다. 나도 읍하여 답례하고 좌정한 뒤, 노인이 내게,
“벼슬이 몇 품(品)이나 되시는지요.”
하고 묻기에, 나는,
“선비의 몸입니다. 귀국에 관광차로 삼종형(三從兄) 대대인(大大人)을 따라 이곳에 온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정사를 ‘대대인’이라 하고, 부사를 ‘얼대인[乙大人]’이라 하니, 얼[乙]은 둘째라는 의미였다. 그는 또 나에게 성명을 묻기에 써 보이니, 그는 또,
“영형(令兄) 대인의 존명(尊名)과 관직과 품계(品階)는?”
하고 묻기에, 나는,
“명함은 □□□(박명원(朴明源))이요, 일품(一品), 부마(駙馬), 내대신(內大臣)이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또,
“영형(令兄) 대인께선 한림(翰林) 출신이십니까?”
하므로, 나는,
“아니어요.”
하였다. 노인이 붉은 명함 한 장을 내어 보이며,
“저는 이와 같습니다.”
한다. 오른편에 가는 글씨로,
“통봉대부(通奉大夫 종삼품(從三品)) 대리시경(大理寺卿) 치사(致仕) 윤가전(尹嘉銓).”
이라 씌어 있다. 나는,
“공(公)이 이미 공사(公事)를 그만두셨다면 무슨 일로 멀리 변새 밖에 나오셨나요?”
하였더니, 그는,
“황제의 명을 받들었답니다.”
한다. 또 한 사람이,
“저 역시 조선 사람이올시다. 천명(賤名)은 기풍액(奇豊額)이옵고, 경인년(庚寅年 1770)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현재 귀주 안찰사(貴州按察使)로 근무 중입니다.”
한다. 윤공(尹公)은,
“이제 사해(四海)가 한 집안이라, 문을 나서면 모두 동포 형제가 아니옵니까. 고려의 박인량(朴寅亮)이 혹시 존문(尊門)의 명망 높은 어른이 아니시옵니까.”
하기에 나는,
“아닙니다. 주죽타(朱竹?)의 〈채풍록(採風錄)〉 중에 나타난 (박□ 박미(朴?))라는 어른이 저의 5대조(代祖)랍니다.”
했더니, 기공(奇公)은,
“과연 문망(文望)이 높으신 상경(上卿)이시구려.”
하고, 윤공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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