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분 항일구국운동가
- 최초 등록일
- 2013.05.01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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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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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추도분은 어떠한 인물인가?
2. 본론 : 추도분과 《생활》주간 / 9ㆍ18사변과 추도분의 전변
민족연합진선의 제시와 구국회운동 참여 / 항일전쟁 참여와 민주정치 요구
3. 결론 : 맺는 말
본문내용
1.서론
추도분은 어떠한 인물인가?
추도분은 1895년 11월 5일 복건성 영안현(永安縣)의 몰락해 가는 봉건 관료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은윤(恩潤)이었고, 도분이란 이름은 그가 사용한 필명 가운데 하나였다. 어릴 때 전통 교육을 받다가 15세 때 복주(福州)공업학교에 입학하면서 신식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남양공학(南洋公學)을 거쳐 1919년 기독교 재단인 세인트존스대학에 입학한 뒤 부친의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곤궁 속에서도 신문기자를 꿈꾸면서 잡지에 투고하고 가정교사 등의 아르바이트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직업에 종사하다가 1922년 황염배(黃炎培)가 이끌던 중화직업교육사(職敎社)에서 발간 된 《교육과 잡지》의 주편으로 들어갔다. 이 후 1926년 《생활》주간의 편집을 맡았고, 1931년 9‧18사변이 발발한 뒤 ‘부저항정책’에 반대해 대일항전을 주장하다가 국민당 정권과 충돌하여 1933년 7월 결국 탄압을 피해 해외로 피신했다가 2년 뒤 귀국해 곧바로 항일구국운동 단체인 구국회(救國會)를 조직하고 이끌었다. 1937년 항일전쟁 시작 후 그는 국민당과 정부에 대해 끈질기게 전민(全民)항전과 민주정치의 실시를 요구하다가 41년에 다시 홍콩으로 피신해 언론활동에 종사하였고 홍콩이 일군(日軍)에 함락된 뒤 중공 점령지역으로 피신하였으나 암이 발병해 1944년 7월 24일 상해에서 사망하였다.
추도분은 초기에 계급투쟁에 반대하고 민생주의 실시를 요구하다가 후에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공에 입당 신청까지 하는 등 1930~40년대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한 중국 지식인들의 겪었던 변화를 대표하였다.
2. 본론
추도분과 《생활》주간
추도분은 1926년 1월 ⟪생활⟫주간의 편집을 맡게 되면서부터 저널리스트로서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1925년 10월에 직교사 내부교류용 소식지로 창간된 ⟪생활⟫주간은 초기에 다른 신문의 기사에서 발췌한 직업교육 소식을 주로 실었지만 그 당시 편집을 맡던 왕지신(王志莘)이 사퇴한 뒤 추도분이 주편을 맡아 흥미 있고 가치 있는 잡지로 개편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