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교육제도와 과정
- 최초 등록일
- 2013.05.21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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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관학
1. 성균관
2. 사학
3. 향교
4. 잡학
5. 종학
Ⅱ. 사학
1. 서원
2. 서당
본문내용
Ⅰ. 관학
1. 성균관
성균관이란 이름은 고구려와 신라 때는 태학 혹은 국학, 고려 때는 국자감成均監으로 부르다가 다시 성균관으로 고쳤는데, 이를 조선왕조가 계승한 것이다.
성균관은 國學太學國子監泮宮賢關首善之地성균관 등으로 쓰여 왔다.
새 왕조를 개창한 조선의 태조 이 성계는 즉위 10일 후인 7월 18일 즉위선언과 함께 우선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모든 儀章과 법제는 일체 고려왕조의 규칙과 定例에 따라서 한다는 원칙 위에 당면 시정방침을 발표하고 문무백관의 지위를 정하였다. 이 때 공포된 관제에 따라 성균관도 전대로 설치하게 되었고, 그 직제도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중 략>
향교의 학생이 서원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향교가 쇠퇴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적당한 師長이 없기 때문에 모여서 한담을 일삼는 일이 많았고 또한 군역을 피하려는 자의 도피처가 되었다.
서원의 관리자들은 어리석은 백성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부려먹는 惡輩의양성소가 된 곳이 많았으며 서원 소유의 토지는 조세를 면하였는데, 그 수확을 유생의 음식으로 낭비했다. 그뿐 아니라 四色派爭이 정권을 다툴 때마다 서원의 유생도 대립하여 이에 가세하였다는 점등을 들 수 있다.
2. 서당
옛날부터 내려오는 글방서재사숙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서당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국민대중의 자제들을 위한 민간의 사설교육기관이다. 서당을 거쳐 향교 또는 4학, 이어서 성균관에 진학했다.
1) 교육목적
서당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4학과 향교에의 입학을 위한 준비기관이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지방의 청소년에게 한문의 독해력을 이해시키고 유교에 대한 초보적 지식을 이해케 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2) 입학자격
서당의 입학자격은 신분적 제한이 없었다. 사농공상은 물론이고 천인의 자제들도 입학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당의 학생은 7, 8세부터 15, 6세의 아동들이 그 중심이 되었으나, 때로는 20세 안팎으로부터 25세 이상도 있는 경우도 많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