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본론
1. 명동의 유래와 변천과정
2. 근, 현대사에서 명동의 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
1) 명동의 공간적 가치
2) 명동의 사회적 가치
3) 명동의 문화적 가치
3. 문화예술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다방
4. 해외 사례
1) 프랑스의 카페 문화
2) 이탈리아 카페 문화
3) 오스트리아의 카페 문화
4) 독일의 카페 문화
5. 시대별 다방의 역할
1) 1900년 대 초, 중반
2) 1930~40년 대
3) 1950년
* 참고문헌
III. 결론
본문내용
명동의 유래와 변천과정
명동이란, 조선시대 한성부 행정구역인 5부 49방의 하나인 명례방에서 ‘명’자를 딴 것 인데, 원래 이 곳을 ‘명례방골’ 이라고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빼앗고 나서 1910년 10월 1일 한성부를 경기도 경성부로 바꾸면서 이곳은 경성부 명동이 되었고, 이듬해 4월 1일에 5부 8면제로 바뀔 때 경성부 남부 명동이라 하였습니다.
명동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제물포항 개항 이후입니다. 초저녁에는 문화의 거리로, 밤에는 불야성을 이후던 명동이 그 명성을 잃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땅값이 오르고 명동을 떠났던 양복점과 양품점, 구두가게 등이 들어서고 다국적 패션의 거리 명동이 문화중심지대로 역할을 하던 70년대, 거리를 오가는 이들이 고급 부티크들이 명동 곳곳에 들어서 ‘패션의 거리’ 명동이 되었습니다.
근, 현대사에서 명동의 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
1) 명동의 공간적 가치
명동은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현재 명동은 백화점과 음식점 등 소비, 위락시설이 밀집한 상업공간이 되어버렸지만, 식민시대와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면서 그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2) 명동의 사회적 가치
명동은 우리나라에서 근대화가 가장 먼저 일어난 곳 중 하나입니다. 1970년대 명동개발이 본격화되는 것과 동시에 1960년대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서구문화가 자리를 잡아 지가 상승, 서구문물 유익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명동은 다시 상업화되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명동이 관광의 중심지가 되고, 현재는 명동 구 국립극장 복원을 시작으로 근대역사탐방로, 명동과 남산을 잇는 모노레일과 스카이워크 설치 등 명동의 옛 명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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