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 관점에서의 자살 재해석
- 최초 등록일
- 2013.06.07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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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불교의 죽음관과 업보윤회설
2.1 원시불교와 죽음관
2.2 대승불교의 죽음관
2.3 불교의 업보윤회설
3. 자살의 정의
3.1 자살의 개념과 원인
3.2 자살의 긍정론과 부정론
3.3 사회적 논란
4. 불교 경전에 나타난 자살
4.1 율장에서의 자살
4.2 아라한의 자살
5. 결론
본문내용
서론
얼마 전 대구의 어느 고등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살하기 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조선일보 1면기사로 공개되었다. 사진 속의 애처로움과 슬픔, 쪼그려 앉아서 우는 모습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정치인, 연예인 들의 자살 또한 매년 여러건 발생하고 있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나 동반자살을 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OECD의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현재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과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이 행위는 옳은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죽음 또한 자연의 섭리일까? 또한 이런 자살들이 불교적 관점에서 범죄이며 선일까 악일까? 본론에서는 불교의 죽음관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자살의 정의와 불교 경전에서 나타난 자살을 통해 결론을 지어보려고 한다.
불교의 죽음관
원시불교의죽음관?불교의 죽음관에 대한 언급은 불교 초기의 경전인 「아함경」에서 볼 수 있는데 정의는 다음과 같다.“낱낱의 중생의 유형에 따라 낱낱의 중생이 죽고, 멸망하고, 파괴되고, 사멸하고, 목숨을 다하고, 모든 존재의 다발(五蘊, pancakkhandha)이 파괴되고, 유해가 내던져지는데,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죽음이라고 부른다.
<중 략>
아라한이 질병으로 이를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되면 육신의 지속을 위해 애쓸 필요 없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서 아라한으로서의 할 일을 다시 지속하면 되기 때문이다.그다음은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수명을 단축하는 경우이다. 아라한은 자신이 원한다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붓다의 상수 제자인 비구 8만명과 함께, 목련은 비구 7만명과 함께 붓다 보다 수 개월 전에 입멸하였으며, 세존은 비구 1만 8천명과 함께 반열반하였다. 이보다 먼저 대애도는 500명의 비구니와 함께 반열반하하였는데, “나는 여래가 입멸하는 것을 차마 볼 수 가 없다. 나 마땅히 먼저 입멸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한 후 대애도는붓다를 찾아가 자신의 의도를 알리고 승낙을 받는다. 사리자와 목련도 이와 같은 이유로 붓다를 찾아가 허락을 받고난뒤 입멸하게 된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자살은 윤회세계 내에서 다시 재생을 가져오지만 아라한은 이미 생사윤회에서 벗어났으므로 그의 자살은 범부의 자살과 달리 도덕적으로 죄악시되지 않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