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토레이의 “성령세례”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및 평가
- 최초 등록일
- 2013.06.21
- 최종 저작일
-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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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一. 요 약
1. 성령의 세례란 무엇이며 또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2. 성령의 세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누구나 받을 수 있다.
3. 어떻게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4. 성령의 세례를 항상 새롭게 받는 일
二. 평 가
1. 성령 세례의 입장에 대한 비판
2. 성령 세례가 모든 신자에게 필수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3.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비판
본문내용
1. 성령의 세례란 무엇이며 또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에서 무엇보다 이 성령의 세례라는 한 개의 사실(단 한번의 경험)에 대하여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행1:5 ; 행11:15 ; 10:44~47).
둘째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되는 사실은 이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그 받는 자 스스로가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뚜렷한 체험을 가진다는 것이다(눅24:49 ; 행19:2, 6).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오늘날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성령의 세례에 관해서 모호하고 불명확한 곳이란 찾아내지 못한다.
<중 략>
행4:8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새로운 충만을 받았고, 4:31에 세 번째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고 이다. 분명하고 풍요한 성경적 증거를 통해서 성령의 은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딤후1:6이하)과 오히려 새롭게 불이 붙거나 다시 붙일듯하기 위해서 받은 바 능력을 유지해 나가고 육성해 나가는데는 거듭 새로운 성령의 충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과 경험의 양면에 비추어 볼 때 틀림없다.
새로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행2:4에서 “성령이 충만하여”란 표현이 행1:5의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표현한 것이므로 두 가지 표현 즉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은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다
<중 략>
성령이 이미 안에 거하시고 계시는 것이 확실한 데도 불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향유하기 위하여 회심 후의 어떤 경험을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신자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 아니면 해를 줄 것인가? “성령세례”를 기다려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성령에게 완전히 자신을 드리지 않은 것에 대한 이미 만들어진 변명을 신자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성령이 모든 거듭난 사람들 안에 이미 거하고 계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신자는 회심 후의 경험과 같은 것을 통하여 강림하시는 성령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자신을 더욱 완전히 드리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성령에게 나아가야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