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왕국을 읽고서
- 최초 등록일
- 2013.07.09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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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난 4월 28일에 있던 일본 정부 주최 ‘주권회복의 날’ 행사는 그 자체로 한국에 이슈를 불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 내의 반발을 소개하는 것에서 오키나와가 중점적으로 보도되었다. 그 이유야 4월 28일은 일본 본토에 있어서는 ‘주권회복의 날’이었을지 몰라도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군정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여기에는 영토분쟁으로 인한 일본의 악감정이 다수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고려기와를 근거로 ‘고려인이 류큐왕국의 기초를 세웠다.’라는 취지의 논문1)이 줄을 이어 나타난 점은 천황가 백제인 설이나 대마도에 관한 영유권 주장,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도 오키나와는 ‘오키나와’인 채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다카라 구라요시의 『류큐 왕국』을 선택하게 되었다.
<중 략>
그리고 공장에서 일해 본 경험으로 알게 된 한국인의 외국인 특히 동남아이사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심각하다. 도저히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일하는 내내 한국인이라는 점이 부끄러웠다. 과연 북한 사람들이라고 차별하지 않을까? 지금 탈북자들에 대한 것만 살펴봐도 통일 후의 상황은 염려스럽다. 한국경제에 실린 "느닷없이 찾아온 統一韓國"이란 기사의 내용 중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를 `오씨(Ossi · 게으른 동독놈)`,`베씨(Wessi · 잘난 체 하는 서독놈)`로 비하해 부르던 모습이 그대로 재연됐다.”라는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 북한 사람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상황에 닥쳐서야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언 밭에 오줌 누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 또한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오키나와와 보다 유사한 상황이다. 제주도에는 약 10세기까지 ‘탐라耽羅’라 불리던 나라가 존재해왔다. 아니,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탐라는 한반도와는 떨어진 독립적인 곳이었다. 고려 초에는 탐라의 국왕인 자견왕이 태자 고말로를 고려에 입조시켜 이때 왕제가 폐지되었고 탐라의 군주를 성주라고 불리게 되었다.
참고 자료
다카라 구라요시 《류큐 왕국》 소화, 2008.
국립제주박물관 《탐라와 유구 왕국》 국립제주박물관, 2007.
김상웅 《해방 후 양민 학살사》 가람기획, 1996.
배극인, 고기정 〈“日본토 차별 못참겠다” 오키나와 독립운동〉 동아일보, 2013년 5월 16일, 22면.
자유아시아방송, 〈[일하며 배우며] 다양하고 자유로운 남한 옷 문화…일부는 지나친 낭비〉 〔온라인게시판〕 (2008년 3월 〔2013년 6월 검색〕);availabel from World Wide Web @http://www.rfa.org/korean/defector_corner/kim_taesan/work_learn_clothes-200803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