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유교사상][개신교][감리교][천주교][유학]유교사상의 전래, 개신교의 전래, 감리교의 전래, 천주교의 전래, 성결교회의 전래, 유학의 전래, 불상의 전래, 도자기의 전래
- 최초 등록일
- 2013.07.18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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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유교사상의 전래
Ⅱ. 개신교의 전래
Ⅲ. 감리교의 전래
Ⅳ. 천주교의 전래
Ⅴ. 성결교회의 전래
1. 서론
2. 역사적 특색
1) 한국인으로 시작한 선교
2) 자립의 움직임
Ⅵ. 유학의 전래
1. 들어가는 말
2. 삼국시대의 유학
3. 통일신라에서 지위 확보
4. 유학자와 육두품
Ⅶ. 불상의 전래
1. 삼국시대
2. 통일신라 시대
Ⅷ. 도자기의 전래
본문내용
Ⅱ. 개신교의 전래
천주교가 전래되던 때에 많은 문제를 낳았던 기독교는 개신교를 유입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장애를 넘어야 했다. 그러나 1882년 한미조약이 체결되자 처음에 처음엔 공의의 자격으로, 후일엔 교사의 자격으로 훈련받은 선교사들이 입국하게 되었고, 1887년 한불 조약의 효력발생과 더불어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도입에 있어서 성리학의 폐쇄성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갈등의 기운이 있었으나 첫 선교사로 왔던 알렌의 갑신정변에서의 역할과 충군 애국적인 선교사들의 노력 때문에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봉건 정부와 침략세력이 결탁하여 민중의 이익과 국가의 자주를 말살하려고 했을 때 이를 수호하려는 기독교 세력과 국가 간에는 새로운 갈등이 빚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Ⅲ. 감리교의 전래
미국의 각 선교단체들은 한미 수교조약 비준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할 때까지 한국 선교사업에 적극책을 쓰지 않고 있었다. 슈펠트 조약이 완결된 직후에 미국은 그 대표 사절로서 루시우스 푸트 (Lucius H.Foote)를 한국에 파송하여 서울에 주재시켰다. 고종황제는 미국 사신의 신임장을 받은 후에 중전의 친척인 민영익을 수반으로 하는 답례 사절단을 미국에 가는 도중에 기차 안에서 발티모어에 있는 가우쳐 대학 총장이며 목사인 존 가우쳐(John F. Goucher)박사와 동행하게 되었다. 미대륙 횡단여행 중에 가우쳐 박사와 민영익은 서로 사귀게 되었고 가우쳐 박사는 처음으로 한국의 실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우쳐 박사는 한국이 선교 개척지가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1883년 11월 6일에 감리교 선교사로 하여금 한국에서 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하도록 부탁하고 그 일을 위하여 2,000달러의 기부금까지 선교본부에 보냈다.
그러나 선교본부로부터 아무회답을 받지 못하자 그 이듬해 1월에 일본주재감리교 선교부의 대표자인 로보트 맥클래이(Robert S.Maclay)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어 맥클래이 박사가 직접 한국을 답사한 후에 선교사업을 착수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맥클래이는 1884년 6월 24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맥클래이는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가까이 지내던 김옥균을 통하여 고종황제께 한국에서 교육사업과 병원사업의 개설을 허락해 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참고 자료
김혜숙, 불상조각의 문화 교육적 이해, 한국초등미술교육학회, 2008
전점례, 천주교의 전래가 근대교육에 미친 영향, 한국교원대학교, 2004
조성대, 유교사상의 현대적 의미, 한국행정사학회, 2001
최복상, 한국개신교의 전래와 수용배경에 관한 연구, 경희대학교, 1975
최대용, 웨슬리신학과 한국감리교 교리적선언의 비교연구, 서울기독대학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