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1950년대의 모더니즘, 1950년대의 문학, 1950년대의 희곡, 1950년대의 대중문화, 1950년대의 국가정책, 1950년대의 동아시아, 1950년대의 원각사
- 최초 등록일
- 2013.07.20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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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1950년대의 모더니즘
Ⅱ. 1950년대의 문학
Ⅲ. 1950년대의 희곡
Ⅳ. 1950년대의 대중문화
Ⅴ. 1950년대의 국가정책
1. 토지개혁(1950년)
2. 항미원조운동과 반혁명활동의 진압
3. 삼반, 오반운동
4. 사상개조운동
Ⅵ. 1950년대의 동아시아
Ⅶ. 1950년대의 원각사
본문내용
50년대 그야말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시인들-지식인들-은 무엇을 말하였으며 무엇을 위하여 어떤 행동을 했는가? 이것을 살펴보기 위하여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시운동 속에서 시대적, 문화적 배경들을 고려해가며 그들의 시적 형상, 시적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1950년대 후기 모더니즘 시인들은 대체로 현실에 대한 전체적인 역사의 인식부족으로 인하여 감정적이고 대안 없는 울분만을 토로(吐露)하였다. 그러나 몇몇 시인들은 암흑시기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으며 자신의 직접적이고도 애절한, 전쟁과 부패된 사회의 체험으로 생생한 시의 형상성을 성취하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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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61년에 KBS-TV, 1964년에는 TBC-TV, 1969년에는 MBC- TV가 시작되었다. 주간지의 경우를 보면 1964년에<주간한국>, 1968년에 <주간중앙>, <주간조선>, <선데이 서울>, 1969년에는 <주간여성>, <주간경향>등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적 주간지들이 1960년대 후반에 탄생하여 대중적 주간지 창간붐을 일으켰으며, 그 발행부수가 평균 35만부를 넘기는 경우도 나타나 대중주간지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가요부문에서는 1959년에 본격적으로 LP판이 제작되어 음반이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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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는 금 토 일 3일간은 계획에 의한 본격적 프로로 개관취지에 입각한 움직임을 취할 것이며 화?수?목 3일간은 국내 일반 예술인들의 문화활동(연극, 무용, 합창, 연주 등)에 자유로운 활용을 허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5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원각사는 외국인들을 위해 지어진 극장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원각사를 이용하려는 예술단체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관객들도 쉽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문지상에서는 원각사가 소극장으로서 갖는 효용을 설명하면서 공연단체나 관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극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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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노(2006), 1950년대 모더니즘 시 연구, 건국대학교
이봉범(2008), 1950년대 문화 재편과 검열,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조경란(2011), 1950년대 동아시아의 반공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검토, 한국철학사상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