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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7.22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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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북한생산의 역사
Ⅲ. 북한생산의 경제
Ⅳ. 북한생산의 상품생산
Ⅴ. 북한생산의 광업생산
1. 지질 광상 및 부존량
2. 광산현황
3. 생산 현황
Ⅵ. 결론
본문내용
경제회복을 위한 수단으로만 그치겠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이의가 있다.
북한 변화의 성격을 한마디로 귀결하면 그것은 북한에서 주장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계획경제하의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있어서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분계선인 것이다. 중국의 경우를 볼 때 중국은 이른바 개혁개방을 시작한 후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변론을 14년은 했다고 할 수 있다. 개혁개방초기 중국에 있어서도 시장경제란 자본주의였고 그것은 곧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는 지뢰밭이었다. 1992년에 등소평의 남방시찰강화가 중국을 결정적으로 시장경제로 떠밀었었다.
1978년에 농촌개혁을 시작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한 후 1984년에야 개혁의 중점을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즉 공장, 기업, 상업 등 분야로 옮긴다.
개혁개방초기 중국도 역시 초점을 북한이 강조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실현하는 데는 아래 단위에 얼마만큼의 자주경영권을 주느냐가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개혁은 한마디로 이 자주경영권이 확대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고도로 집중되고 통제가 많던 계획경제의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중국은 이를 위해 농촌의 개혁에서는 호도거리를 실시하여 자주경영권을 개인에게 주었고 기업과 공장은 政企분리로부터 개혁을 시작하였다.
여기에 중국의 초기개혁과 북한변화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농촌의 경우 중국은 “조직의 군사화, 행동의 전투화, 생활의 집단화”를 지향하며 집체소유제로부터 전민소유제로, 공업화를 지향하여 세워졌던 인민공사제도를 페지하고 호도거리를 실시하였다. 1960년대 3년 자연재해시기 농촌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페지당한 호도거리가 정부의 개혁시책으로 실시된 것이다. 이 개혁은 중국농민들의 적극성을 최대한 발휘시켰다. 농망기만 되면 도시에서 총동원하여 농촌을 지원하여도 수확고가 올라가지 않던 농촌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잉여노동력이 생겨나 향진기업이 생겨나고 농촌인구의 도시로의 이전이 시작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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