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민족주의 사학
- 최초 등록일
- 2013.08.14
- 최종 저작일
-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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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말에 태동하여 일제강점기에 성립, 발전한 민족주의 사학에 관해 정리한 레포트이다.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최남선의 민족주의 역사인식을 살펴보고 그 특징을 규명하였다.
목차
1.머리말
2.일제 시기 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3.민족주의 사학자의 역사인식
1)박은식의 역사인식
2)신채호의 역사인식
3)정인보의 역사인식
4)최남선의 역사인식
4.평가
5.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준비하면서 느낀 점
본문내용
1.머리말
한국 사학사에서 민족주의 사학은 19세기 말에 태동하여 일제 강점기인 1910~20년대에 성립되었고, 1930년대에 가서 발전기를 맞았다.
민족주의 사학이 태동․성립․발전하는 이 시기에 한국은 대내적으로 전근대적인 봉건 질서를 개혁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주의 사학은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수호할 뿐 아니라 나아가 외세에 적극 항거하려는 민족의식의 고취 내지 민족 운동의 전개와 깊이 관련 되어 있었다.
한편 일제 강점과 더불어 더욱 강렬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사학이 성립되었다. 1910년대 박은식을 거쳐 1920년대의 신채호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의 연구와 보급이 국권 회복․독립 투쟁의 중요 방편임을 인식하고 민족사 연구에 몰입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역사 연구 방법을 답습한 것이 아니고, 식민주의 사학에 대항할 역사 의식과 방법론을 확대․심화 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근대 역사학‘의 성립이 가능하게
<중 략>
민족주의사학은 연구자들이 직접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그 일환으로서 우리 역사를 연구하거나, 또는 직접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식민지지배 아래 민족정신을 높이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역사연구에 종사하였다. 이런 이유로 민족주의사학은 강한 정신주의·관념주의에 치우쳤다.
따라서 이들은 역사학 방법론의 세련화와 과학적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민족 단일체라는 외부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민족 개개인이라는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영웅 사관에 기울어졌다는 것도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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