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몽고]몽골(몽고)의 약력, 몽골(몽고)의 기본정보, 몽골(몽고)의 경제, 몽골(몽고)의 음악, 몽골(몽고)의 관광지, 몽골(몽고)의 육식문화, 몽골(몽고)의 사전편찬
- 최초 등록일
- 2013.09.02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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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몽골(몽고)의 약력
Ⅲ. 몽골(몽고)의 기본정보
Ⅳ. 몽골(몽고)의 경제
Ⅴ. 몽골(몽고)의 음악
1. 가요
2. 악기
Ⅵ. 몽골(몽고)의 관광지
1. 복트칸 궁전(Winter Palace of Bogd Khan)
2. 간단테그친렌(Gandantegchilen) 수도원
3.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자연사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
4. 네 개의 신성한 산봉우리(Four Holy Peaks)
Ⅶ. 몽골(몽고)의 육식문화
Ⅷ. 몽골(몽고)의 사전편찬
1. 표기 방식
2. 표제어 선정 문제
3. 사전의 종류와 표제어 배열
Ⅸ.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문화의 이동통로로서 몽골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몽골에는 이른 시기부터 다양한 외래종교와 사상이 유입되었다. 특히 몽골인들의 지배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13-14세기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景敎), 이슬람교, 도교, 불교, 카톨릭 등 여러 종교가 몽골 지역에 전해졌다. 이처럼 다양한 종교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몽골 지배층의 전략적인 고려와 그 무렵 몽골초원에 체계화된 종교와 사상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이건 이질적인 요소와 소수약자에게 비교적 관대한 몽골인들의 정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리한 정치‧사회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때 전래된 종교나 사상은 몽골땅에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 전통도 후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예를 들면 13-14세기 몽골과 원나라에 왕정에는 다수의 이슬람상인과 정치인이 활동했지만, 그들에 의하여 몽골인들이 어느 정도 개종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물론 원나라 멸망(1368년) 이후 이른바 ‘북원시대’에 서몽골인들의 이름 속에 ‘마흐무드’, ‘이스마일’ 등 이슬람식 이름이 확인되고 있지만 몽골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수용되는 16세기 말기 이후에는 그나마도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중 략>
몽고인들은 인생 최대의 쾌락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봄날에 준마를 타고 매를 손에 들고 사냥터에 나가서 매가 날아가는 새를 잡는 모습을 보는 데 있다고 대답한다고 할 정도로 사냥을 즐긴다. 따라서 이들은 고려를 정복한 뒤 수차례에 걸쳐 사냥에 쓸 매를 바치게 하였고 고려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매의 사육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을 설치하게 된다. 응방은 충렬왕 때 설치되었는데 책임자에게 종삼품에 해당되는 벼슬을 줄 정도로 중시하였다. 매사냥은 매가 사냥감을 공격하는 힘과 기교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매를 잡는 것과 훈련을 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원나라 황제는 매의 사육법과 매사냥에 정통한 달달(韃韃 동몽고에서 살던 몽고계 유목민)의 응방자(鷹坊子)를 수십 명 고려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매사냥뿐 아니라 멧돼지나 곰, 사슴도 즐겨 사냥을 하여 원종 때에는 호랑이를 잡으러 원정을 오기도 하였다. 원나라에 볼모로 갔던 충렬왕은 이들에게 영향을 받아 사냥을 즐겼고 이후 역대 왕들의 사냥기록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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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2006), 새 몽골이 온다, 기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