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13.09.11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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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기 918~1046 청자 백자의 발생, 발전기
2. 중기 1047~1146 성숙기, 비색청자 전성기
3. 후기 1147~1274 상감청자 발생, 발전, 전성기
4. 말기 1275~1391 상감청자의 변화, 쇠퇴, 문자감입, 조선도자로의 이행
5. 청자 발생설
본문내용
초기 918~1046 청자 백자의 발생, 발전기
918년부터 1046년까지의 기간은 고려백자 발생의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다. 청자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공예로부터 자기공예로 변모하면서 생산이 시작되었다.
918년은 태조가 즉위하기는 하였으나 아직 후삼국시대로 정치적 내란기였다. 이 때 즈음하여 통일신라 토기 계통인 회청색 경질토기가 낮은 굽의 일상용기형태로 변형되었고, 또한 회유기술이 계속 개발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 하는 예는 울릉도 천부동 고분 출토의 주름무늬 작은 항아리, 방형민무늬편병, 긴목병이 있다. 또한 태평흥국8년명(983)명의 석함과 함께 출토된 녹유사리소호가 있다.
<중 략>
후기 1147~1274 상감청자 발생, 발전, 전성기
후기는 의종 1년부터 원종 말년까지 약 127년간으로 상감청자가 발생, 발전하여 급성장함으로써 상감청자의 전성기를 이루는 시기이다. 후기의 상한 기분은 상감기법의 발생에 근거를 두었고 하한의 기분은 확실한 편년 자료나 기법상의 변화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정치적 변화에 따른 사회문화의 변천에 근거하였다. 1231년 몽고 침입을 받았다 하여도 고려의 문화는 독자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가 원과 화약을 맺은 뒤 몰려오는 원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변화를 기준으로 하한을 정하였다. 상감청자의 발생, 발전, 전성기의 상황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문헌기록과 제작시기추정이 가능한 유물들이 있는데 청자기와와 문공유 무덤에서 출토된 청자상감보상당초무늬 대접, 명종 지릉에서 출토된 일괄 청자 등이 있다.
<중 략>
9세기 중반, 중국에서는 해무리굽의 성형이 쇠퇴한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적어도 9세기 전반 중부지방에서 청자가 제작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중부지방은 남부지방의 토축요와 달리 전축요로써 월주요의 가마와 흡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중부지방에서 초기청자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청자의 9세기와 10세기발생설의 쟁점도 해무리굽에 있다. 9세기 설은 해무리굽 이전의 형태인 선해무리굽을 예로 들고 있으나 편년자료가 나온 것은 10세기 밖에 없다는 점과 해무리굽이 가마터 토층의 맨 아래에 나오지 않는 다는 점을 들어 9세기설을 부정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