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의 '잉여인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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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서두는 극의 형식으로 시작한다. 만기치과의원이라는 무대와, 그 무대를 둘러싸고 활동하는 등장인물들의 대략적인 성격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장치를 해두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빈곤과 사회의 상처가 엄습하는 침울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작가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키는 고리의 매개로 정(情)을 선택함으로써 이 소설이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짐작토록 한다. 또 봉우가 미스 홍을 따라다니는 부분이나 봉우의 처의 만기를 향한 구애, 그리고 만기 처제의 만기를 향한 순수한 마음 등은 작품내에서 희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전후의 사회상과 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그 시대의 표본들이다. 말 그대로 잉여인간이다. 죽지 못해 살아 있는, 나머지 인생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각자 험악한 세파를 견뎌내며 살아 남은 애잔한 슬픔이 새겨져있다. 주동인물인 만기는 인간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절망 속에서 그는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친구와 가족들의 이로움을 먼저 보살피면서 산다. 주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가며 살아간다. 나머지 인물들 역시 나름대로의 아픔과 어둠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극중에서 완전하게 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제자리에서 제노릇을 하면서 살지 못 하고 그릇된 열정에 이끌려 살아갈 뿐이다. 전쟁의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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