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명성황후 김옥균 전봉준 (총체적인역사적상황과시대적과제)
- 최초 등록일
- 2013.10.09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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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흥선대원군 / 명성황후 / 김옥균 / 전봉준
2. 역사적 상황
3. 인물평가
4. 한눈에 알아보는 주요사건들
본문내용
거스를 수 없는 근대화의 물결과 개화기
흥선대원군 / 명성황후 / 김옥균 / 전봉준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1820~1898]
조선 후기의 왕족·정치가. 고종의 즉위로 대원군에 봉해지고 섭정이 되었다. 당파를 초월한 인재등용, 서원철폐, 법률제도 확립으로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쇄국정치를 고집함으로써 국제관계가 악화되고 외래문명의 흡수가 늦어지게 되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오개혁 등으로 은퇴와 재집권을 반복하였다.
명성황후 [明成皇后, 1851~1895]
조선 고종의 황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반대하여 정권을 다지고 일본과 수교하였으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위기로 청나라의 도움을 받았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 세력을 추방하려하자 일본 낭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중 략>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최초의 근대적조약.
일본이 운양호 사건을 구실로 조약을 강요하였다. 최초의 근대적 문호 개방 조약나 불평등 조약. 일본의 침략적 의도가 조약문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1882년 - 임오군란
구식 군대가 신식 군대와의 차별 대우에 일으킨 난으로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대원군이 일시 재집권하였다. 그러나 청군이 개입하여 대원군을 청으로 압송하고, 일본세력을 밀어내었으며 고문을 파견, 내정간섭하였다. 제물포조약 체결로 청과 일의 권한 확대
* 제물포조약(1882년) : 임오군란에 대한 배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조*일간 조약으로 여기에서 일본은 공사관 보호를 명목으로 경비병 주둔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그리고 사죄사로 박영효가 일본에 건너갔으며 이때 태극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참고 자료
한번만 읽으면 확잡히는 국사 (하) 백유선 한언
한국사콘서트 - 백유선 두리미디어
인물로 보는 조선사, 김형광, 시아출판사
교양 한국사. 이덕일, humanist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4, 박은봉, 웅진씽크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