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임진왜란에 대한 명칭2. 임진왜란 전의 동아시아
1) 조선의 정치 상황과 사림의 집권
2) 명의 쇠퇴와 북로남왜
3) 일본의 전국시대 통일
3. 동아시아 각국 대외관계
1) 사대와 교린의 조선
2) 대외관계 중심의 명
3) 무역국으로 성장한 일본
4. 국제전으로써 임진왜란의 전개
1) 전쟁의 발발과 전개
2) 수군과 의병의 활약
3) 강화회담과 정유재란
5.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
1) 전후 조선의 대내외 상황
2) 명의 쇠락과 왕조 교체
3) 일본의 정권 교체와 조일 국교 재개
본문내용
1592년(선조 25) 조선에서 일어난 임진년의 전란은 같은 해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 병선 7백여 척과 1만 8천여 병력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부산진과 동래성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 만에 나라의 운명을 뒤흔드는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이라 부르고 있다. 또 중국에서는 '만력동원(萬曆東援)' 혹은 '만력원조(萬曆援朝)'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이를 '임진조국전쟁'이라 칭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Hideyosi's Invasion of Korea : 1592-1598'이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전쟁을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임진년의 왜적' 또는 '임진년의 변란'이라고 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정착된 것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임진왜란이란 명칭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있었던 일본과의 전쟁을 총칭하는 말이다. 한말(韓末)의 교과서나 일제시대의 한국 측 서술에서는 '임진난'으로 표현되다가 1946년 김성칠의 『조선역사』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임진왜란이란 용어가 사용되어 한국사의 학술용어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성격의 명칭이 변하지 않고 4백여 년 동안 사용되었다는 것은 임진왜란을 보는 시각이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2. 임진왜란 직전의 각 국 상황
1) 조선의 정치 상황과 사림의 집권
16세기 초반은 조선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였다. 세조의 패정과 연산군의 난정을 거치면서 조선왕조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을 통해 연산군 정권이 무너지고 중흥의 기운이 높아졌지만, 박원종(朴元宗), 유순정(柳順汀), 성희안(成希顔) 등 정변을 주도한 공신들의 행태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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