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고려시대 내시(內侍)란?
Ⅱ. 내시란 어떤 존재인가? - ⅰ. 내시의 자격
Ⅱ. 내시란 어떤 존재인가? - ⅱ. 내시의 역할
Ⅲ. 국왕과 내시와의 관계
Ⅳ. 내시와 관련한 일화
Ⅴ. 고려시대의 환관은?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고려시대 내시(內侍)란?
일반적으로 ‘내시’라고 하면 거세된 남자인 환관이 국왕의 측근에 있으면서 왕명을 전달하는 조선시대 내시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내시와 환관(宦官)이 별도로 존재하였다.
즉, 고려의 내시는 환관, 즉, 남성이 제거된 고자가 아니고, 오히려 대개가 귀족 자제로서 용모가 단정하거나 유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 중에 선발된 소위 엘리트였다. 우리 나라 사립대학의 창시자인 최충(崔冲)의 손자 최사추(崔思諏), 고려 중기 최고의 지식인인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金敦中), 최초로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安珦) 등은 모두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내시로 선발되었다.
이러한 내시가 고려시대에 언제 어떠한 직급으로 설치되었는지,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918년(태조 1)에 오늘날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광평시랑(廣評侍郞) 직예(職預)를 내시서기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고, 문종(文宗)이 재능과 공로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용모가 수려한 사람 20명 정도를 내시로 뽑아 자신을 시종하게 하였으며 그 수고의 대가로 별사미를 주었다는 사실을 보아 그 당시에 이미 내시가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시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내시가 될 수 있었던 자격과 그들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내시는 여러 시종들과 함께 왕의 행차에 동행한 것은 물론 왕명의 초안을 작성하거나 국가 기무를 관장하고 때로는 유교경전을 강의하기도 하였으며, 국왕의 곁에서 각종 업무를 처리하였다.
이처럼 왕의 측근을 지켰던 만큼 국왕과의 관계는 어떠했을지 또한 살펴볼 것이다. 이 관계는 고려 전기와 무신집권기, 그리고 고려 후기인 원 간섭기에 각각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데, 그 양상은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 고려 시대에도 역시 환관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환관의 경우, 내시와 놓고 견주어 비교할 만큼 동급의 대상은 아니므로, 내시를 중심으로 논한 뒤, 후에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Ⅱ. 내시란 어떤 존재인가? - ⅰ. 내시의 자격
그렇다면 고려 시대에 내시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는 고려 시대에서도 전기와 그 이후를 거치면서 내시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자격 양상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려 전기와 무신집권기, 그리고 원 간섭기 때의 내시의 자격과 그 각각의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고려 전기 때의 내시의 자격을 살펴보면 첫째, 내시로 입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사하여 관료라는 신분을 가져야 했다.
참고 자료
한국 역사 연구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 정치, 경제생활 이야기」, 청년사, 1997
김보광, 「高麗 內侍 硏究」,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1
이정훈, 「고려 전기 內侍와 국정운영」, 한국사연구 139, 2007
고려사절요 14권 희종 원년 5월, 고려사 권129 열전 42참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각주참고용)
동영상 출처 - 웅씨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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