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연간의 탕평을 통한 왕권의 재정립
- 최초 등록일
- 2013.11.05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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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정조의 의리론
Ⅲ. 정조의 탕평과 왕권강화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6세기 사림이 정치무대에 진출한 후로부터 조선 정치의 역사는 붕당 간 정치논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붕당정치는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정치적 의견의 수렴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 냈지만 숙종연간에 환국을 거치면서 강력한 일당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국정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이 후 노론의 일당전제화가 자리 잡고 왕권은 강력한 신권 아래 추락하였다. 따라서 살벌한 당쟁 속에서 즉위한 두 왕, 영•정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추락한 왕권을 바로세우고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정국은 탕평을 표방하였지만 실로는 왕권의 재정립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 살펴 볼 시기는 정조시기로 <정조 말년의 정국 운영과 심환지(沈煥之)(김문수)>, <영조 말~정조 초의 정국과 정치 세력의 동향(김정자)>을 통해 정조연간 탕평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리론의 핵심 내용과 구축과정과 더불어 의리론이 어떻게 정국안정에 관여했는지 확인한 후, <탕평의 원리와 탕평론(김성윤)>, <정조의 『대학』탐구와 새로운 군주론(이태진)>을 통해 정조의 탕평정치가 어떻게 왕권강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 위의 논문에 대한 나의 종합적인 의견과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이 시기의 탕평정치의 성격을 정의해보겠다.
Ⅱ. 정조의 의리론
정조는 세자였던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을 겪고, 이후로도 동궁 시절에 수많은 정적(政敵) 세력에게 안위를 위협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영조 51년 대리청정을 한 후 이듬해 영조 52년에 즉위하였다. 이러한 위협 속에 세손 시절을 지낸 정조에게 있어서 왕위에 오른 후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고 왕권의 지엄함을 세우는 것이었다. 정조는 즉위 후 가장먼저 영조연간 정치를 좌우한 척신과 권간세력을 정계에서 축출하는 일을 진행했다. 이를 병신옥사라고 한다. 정조는 제일 먼저 ‘임오의리’로써 동궁의 대리청정과 즉위를 반대했던 세력들과 선세자 신원 상소를 올린 세력들에 대해 토죄와 처분을 실시하였다.
<이하생략>
참고 자료
김성윤, <탕평의 원리와 탕평론><<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하, 태학사, 2011
이태진, <정조의 『대학』탐구와 새로운 군주론><<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하, 태학사, 2011
김정자, <영조 말~정조 초의 정국과 정치 세력의 동향><<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하, 태학사, 2011
김문식, <정조 말년의 정국 운영과 심환지(沈煥之)><<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하, 태학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