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시험
- 최초 등록일
- 2013.11.06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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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제의 식민지 정책(1910-1920년대)
2.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4. 무장투쟁
5.사회주의/민족주의(의 분화-타협/비타협)와 신간회
본문내용
1. 일제의 식민지 정책(1910-1920년대)
1910~20년대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나 일본 본국의 국가기관을 동원해 직접 통치하지 아니하고 조선총독부라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총독부-입·사·행정 모두, 식민지 조선에서는 3권 분립이 지켜지지X). 또한 조선이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도 일본인이 향유하는 일본헌법 및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조선을 통치(조선내 조선인→조선인도 일본인도 X).
총독의 자격은 조선 주둔 일본군을 지휘(욱·해군 대장 출신으로 제한). 1910년대에 실시된 헌병경찰제도는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군인 신분인 헌병이 일반 경찰행정까지 담당). 헌병경찰은 의병토벌·독립운동가 색출과 검거·첩보수집·범죄즉결처분권·민사쟁송조정권의 권한과 일본어 보급·농사개량·징세·산림 및 위행감독 등의 행정업무도 관여.
<중 략>
이러한 가운데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자치론’을 들고 나옴. 총독부는 이러한 주장을 은밀하게 부추겨 민족진영을 분열하고자 함. 특히 ‘자치론’을 비롯해 참정권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나옴. 이와 같이 일부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자치운동을 전개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국학운동·조선학운동)은 격렬히 반대. 자치론 진영에는 천도교 신파(최린)·동아일보(송진우·이광수)등이 있고, 반자치론 진영에는 천도교 구파(권동진·오세창)·조선일보(안재홍) 등이 있었으며, 사회주의자들도 자치론에 격렬히 반대.
신간회의 결성과 활동,
한편 사회주의자들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제휴할 필요를 느낌. 이에 서울청년회쪽과 물산장려회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이 먼저 조선민흥회 결성. 여기에 일본유학생 출신의 사회주의 단체인 정우회가 1926년 11월 ‘정우회선언’ 발표. 이러한 상황은 당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협동전선’결성 움직임에는 중국의 국공합작(전략적 협동)·코민테른의 조선에서의 민족통일전선 우선론(+시간적 우선론)·재중국 ?喚諮諍염〉湧 민족유일당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