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신학
- 최초 등록일
- 2013.11.13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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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도바울은 여기서 은혜의 계약과 행위의 계약을 대립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듣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은혜의 계약을 행위의 계약으로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씀 앞, 로마서 10장 1절부터 사도는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며 이들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의를 위한 율법의 마침이시다’라는 사실에 대하여 무지했다. 그런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해 무지한가? 내 마음의 소원은 당신들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로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하여, 둘째로는 이 두 가지 의 중에 어떤 것이 지혜로운 선택인 것인지 밝혀보려고 한다.
첫째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모든 부분을 완전하고 결함이 없이 완벽하게 순종할 것을 요구했다
<중 략>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는 본성의 부패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후에 이런 주장의 불합리성이 나타나자 그들은 그 주장을 포기하고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 안에도 지배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중생한 사람’, ‘칭의 받은 사람’, ‘믿는 사람’ 이라는 단어들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다음 문제를 탐구하려 한다. 친의 받은 사람은 칭의 받는 순간에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인가? 그의 마음 안에는 죄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리고 그가 은혜를 떨어뜨리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되는 것인가?
칭의 받은 사람의 상태는 표현할 수 없을 전도로 위대하고 영광스럽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피조되었고 씻겨졌으며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바로 칭의 받은 그 순간부터 외적인 죄나 내적인 죄나 모두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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