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의 생애와 문학관
- 최초 등록일
- 2013.11.22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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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려의 생애
2. 우해이어보
3. 사유악부
4. 방주의 노래
5. 정리 –허호녕
본문내용
1. 김려의 생애
담정 김려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조선은 새로운 질서가 활발히 모색되던 시기였다. 민중의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이 점차 거세어지는 추세에 있었고, 집권 양반계급 내부의 권력투쟁 또한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현실의 낡은 가치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는 ‘연암그룹’이라 이름할 만한 실학파 문학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러한 사상성은 없으나 나름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보여준 일단의 문인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을 ‘담정그룹’이라 할 수 있다.
담정의 탁월한 시인적 감수성은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담정은 자신의 새로운 인식을 체계적 사상으로 논리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인적 감수성으로 근대적 평등의식을 선취함으로써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예감한 점에서 가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한다.
10여년에 걸친 유배생활을 통해 담정의 감수성은 단련되고 민중적 지향을 뚜렷이 하게 되었으며, 개인적 영역을 넘어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1. 가계
김려의 자는 사정, 호는 담정․해고․귀현자등이며 본관은 연안이다.
담정의 가계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담정 당대의 지체가 노론 벌열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다소 벗어나 있어서 보수적 이념의 구속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다른 하나는 담정의 집안이 노론 중에서도 시파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문의 내력은 시파와 벽파사이의 권력투쟁이 첨예하게 전개되었던 정조 재위 연간에 청년시절을 보냈던 담정의 생애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청년시절(1780~1797)
담정은 15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27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유배 이전까지 성균관에 출입하였다. 이 시기에 담정과 교유한 인물로는 이안중․이우신․이노원․김조순․이옥․권상신․김선신등이 있다. 후일 담정이 이들의 주요작품을 『담징총서』로 집성한 데서도 알 수 있듯, 담정은 이들과 깊은 친분을 쌓으며 정신적․문학적 영향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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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우해이어보 소극 우산잡곡 연구> 박준영. 동양한문학회, 2002
<『우해이어보』와『자산어보』연구> 김홍석. 한국문화사, 2008
<김려작품집> 오회복 譯. 문예출판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