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국어표기의특징
- 최초 등록일
- 2013.12.08
- 최종 저작일
- 2012.0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없음
본문내용
우선 전기 중세 국어의 대표적인 표기인 吏讀, 口訣, 鄕札에 대해 알아보자.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한국어를 적던 표기법이 이두이다. 吏道?吏刀?吏頭?吏吐라고도 한다. 이두는 넓은 의미로는 漢字借用表記法 전체를 가리키며 鄕札?口訣 및 삼국 시대의 고유명사 표기 등을 총칭하여 향찰식 이두 또는 구결식 이두 등의 말로 쓰이기도 하나, 좁은 의미로는 한자를 한국어의 문장 구성법에 따라 고치고 이에 토를 붙인 것에 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체로 意味部는 한자의 훈을 취하고 形態部는 음을 취하여 특히 곡용이나 활용에 나타나는 조사나 어미를 표기하였다. 이두는 신라 때 薛聰이 만든 것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서동요》나 《혜성가》의 제작 연대가 6세기경이라는 것과 이두의 표기가 보이는 경주의 南山新城碑 및 설총이 신문왕(재위 681~691) 때의 사람이라는 사실로 보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초기 이두는 단어를 국어의 문장구조에 따라 배열하고 조사와 어미까지 표기하여 문장의 의미 및 문맥을 분명하게 표기하기 위한 차자 표기 방식이었다. 경주남산의 신성비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가 있다. 그 후 본격적인 이두는 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에서 나타난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이두는 대명률직해(1395;30권, 高士聚, 태조 4년)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조선 개국 초에 明律을 이두로 번역한 것이다.
국어의 문장의 구조를 반영하고 조사와 어미 등 문법형태소가 표기되기는 했지만, 다양한 문법형태소 특히 문말 어미가 극도로 단순하게 표기되거나 아예 삭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랜 동안 사용된 이유는 첫째, 실용상으로 이두는 吏胥들과 관계 있다. 둘째, 한문의 후광을 입었다. 셋째, 한글로 된 문서는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