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사의연구 요약본, 한국사학사의연구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3.12.1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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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려후기의 역사인식
2. 조선전기의 역사인식
3. 조선후기의 역사인식
4. 한말의 역사인식
5. 일제시대 반식민사학론
본문내용
고려후기의 역사인식
고려후기의 역사서술은 상당히 활발했던 편이다. 항예적 실록의 편찬은 제외하더라도, 통사류의 사서, 불교사서, 영사시 등이 이 시기에 편찬되었는데, 이것은 고려 전기나 조선 초기와 비교해도 적은 숫자가 아니다. 고려에는 초기부터 시정의 기록을 관장하는 사관이 있었다. 실록 편찬은 항례적인 것이었다. 고려 후기 16대 220여 년 중 9대 160여년의 실록이 편찬되었지만, 충혜부터 공양왕까지 7대의 실록 편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충혜, 충목, 충정왕의 실록은, 아마 고려 말에 편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공민왕 이후 4대의 실록은 고려 때에는 편찬되지 못했다. 또한 20여 종의 사서가 편찬되었다. 이 중에는 영사시도 있고, 불교사서도 있다. 또한 기존 사서에 대한 증보, 개찬도 있었고, 원의 사서 진공 요구에 응해서 편찬된 것도 있다. 대체로 고려 당대사의 편찬이 많았던 것도, 또한 국가적 사업으로 편찬된 관찬 사서가 많았던 것도 이 시기 역사 서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신 집권시기의 역사서술, 특히 국가적 사업으로서의 사서 편찬은 크게 위축되어 있었지만 원 간섭 시기에 이르러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자주 의식의 내연 등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모든 사서가 민족 의식의 발로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의 간섭 및 통제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은 실록 및 통사류 등 고려 역사서의 진공을 요구했다. 원의 고려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고려 내정 간섭을 위한 자료의 획득, 고려의 역사 서술에 대한 통제와 간섭을 위함이었다. 원 간섭기에 사서 개편도 이루어졌는데 표면적 이유를 보궐로 밝히고 있지만 원을 의식한 개정이나 원의 압력에 의한 개편이라고 볼 수 있다. 반원적이고 자주적인 의식이 고조되고 있던 공민왕 이후, 고려의 역사서술에 대한 관심은 새롭게 대두되었다. 고려 말에 본조사 및 실록 등에 관해 관심이 높아졌고, 사실의 충실한 기록과 직서 등이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었는데 이는 무신 집권 시기 및 원 간섭 시기의 역사 서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가능했던 것이고 동시에 이것은 자주적 의식의 발로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