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이해] 한국 방송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3.05.13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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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방송의 태동기(1927.2 ∼ 1945. 8)
2.혼란 정비기 : 한국방송의 혼란과 정비(1945. 8 ∼ 1953. 7)
3. 재건, 성장기(1953. 7 ∼ 1961. 5)
4. 방송경합기(1961. 5 ∼ 1973. 2)
5. 전환기 : 한국방송의 도약과 상처(1973. 3 ∼ 1980. 12)
6. 공영기 : 방송의 공영화와 컬러방송 시작
- (1980. 12 ∼ 1990. 9) / 방송통폐합에서 방송제도 개편까지
7. 공. 민영기 : 한국방송변혁과 위성방송시대 진입
- (1990. 9 ∼ 1997. 2)/ 방송제도 개편에서 위성방송시대 개막까지
8.새로운 방송의 도래기
본문내용
1. 한국방송의 태동기(1927.2 ∼ 1945. 8)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개국되었다. 경성방송국은 한국인이나 일본인 모두에게 새로운 뉴미디어의 산실로 각광을 받기에 충분했다.
1933년 4월 26일, 일본어방송을 제1방송으로 하고 한국어방송을 제2방송으로 하는 이중방송이 개시된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는 제2방송에 대한 총독부의 간섭과 탄압이 시작된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이때부터 방송을 완전히 전쟁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징병과 징용에 한국인을 동원하기 위한 독려방송이 많아졌고, 출연하기 싫어하는 한국인 문화예술인들을 방송에 동원하여 그런 방송을 강요함으로써 훌륭한 한국인들에게 흠집을 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인 방송인들은 간신히 허용되는 연예오락부문에서 만이라도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방송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
1942년에는 경성방송국 단파 수신사건이 발생하여 200명에 가까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큰 곤욕을 치렀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방송국에서는 우리말 방송을 위해 있던 제2방송부가 없어지고 우리말 방송 부분은 더욱 위축되었다. 패망 직전에 제2방송은 정파되고 제1방송에서 우리말 뉴스를 하는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