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조선초 억불정책
- 최초 등록일
- 2013.12.22
- 최종 저작일
-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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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말 척불론
1. 고려시대 유불론
2. 척불론의 대두와 배경
Ⅲ. 조선초 억불정책
1. 태조의 척불정책
2. 태종의 척불정책
3. 세종의 척불정책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왕조의 건국은 왕조교체 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측면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성리학을 수용하여 사회사상적인 교체를 이루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성리학적 사유 구조는 현재우리의 삶에도 적지 않은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고려 말 개혁파 인물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그 의도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 재정 및 국역자의 증대를 위해 사원을 해체하려는 것이었다. 둘째는 개혁파의 지도이념인 유교 이데올로기의 확립을 위해 고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불교의 배척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의한 새 왕조 ‘조선’의 건국 이후에도 동일한 목적과 이유로 적용되었다.
태조는 신진사대부와 정치적인 노선을 함께하였지만 그 폐해를 시정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불교 자체를 적극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의 독실한 불교 신행은 태종세종 등 조선 초기의 군주들에게 영향을 주어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면서도 불교를 억압하는 시책이 이루어진다.
이 글에서는 먼저 고려 말 척불론이 제기되는 정치사적 배경을 살펴 볼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조선초 태조, 태종, 세종대의 억불정책이 당시 불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Ⅱ. 고려말 척불론
1. 고려시대 유불론
고려시대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이원적인 구조였다. 불교는 정신적으로 정신세계를, 유교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세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는 두 사상의 병존을 모순 없이 받아들이고 양자를 동일 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 혜심은 불교의 입장에서 유불이 같음을 주장했다. 혜심은 유학을 공부한 향리학식층의 자제로 사마시에 합격한 경력을 가지고 불교의 입장에서 유불일치사상을 주장했다. 이러한 혜심의 유불관은 역할분담론적 논리였던 유불론과 달리 유교와 불교를 철학적으로 일치시키고 나아가 불교가 주체가 되는 것을 모색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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