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왕릉
- 최초 등록일
- 2013.12.2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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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시대의 각 유명한 왕릉인 무열왕릉, 무령왕릉, 안악3호분에 관한 고찰
목차
0.서론.
1장. 무열왕릉(신라)
2장. 무령왕릉(백제)
3장. 안악3호분(고구려)
4.결론
본문내용
고분이란 과거 및 현재의 무덤 중에서 역사적 또는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분묘로써 분구를 갖춘 고대의 묘를 말한다. 우리는 고분을 통해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이나 문화, 생활방식, 종교의 영향력 등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 고분의 정보를 가지고 역사책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무덤이 성행하여 쇠퇴했다.
이 세 무덤은 묘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는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과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이 가치있다. 서술순서는 무열왕릉부터 시작했다. 셋 중에 가장 친숙하기도 했고, 요즘 준비하는 과제인 황산벌과도 관계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안악3호분은 너무 생소하고 레포트를 작성하기 전에 조금 조사해봤을 때 묘의 주인이 누군지 정확하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무열왕릉, 무령왕릉, 안악3호분 순으로 조사했다.
1장. 무열왕릉(신라)
신라는 골품제도 때문에 성골과 진골이 왕족이었지만 성골만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이 사라지자 진골출신인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김춘추는 왕의에서 쫒겨난 신라 제25대 진자왕의 손자이며 이찬 용춘의 아들이다. 그는 죽음을 무릎쓰고 고구려에 혼자 가서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당나라에 외교임무를 띠고 다녀왔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해 삼국통일의 대업의 기틀을 잡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