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장 서 론
제2장 대구시민의 쉼터 달성공원, 일제 강점기엔 대구신사
제1절 그 시절, 대구신사
1. 달성에 신사와 공원이 조성된 배경
2. 대구신사 건립과 철거
제2절 달성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殘滓)
1. 신사 앞에 세워졌던 돌문인 도리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 흔적
2.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일제 잔재, 왜 향나무
3. 변질된 달성의 의미
제3장 다른 의미의 잔재, 수성못을 위한 노력
제1절 수성못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을까?
제2절 잔재에 대한 다른 태도
제4장 그 외 일제 잔재 흔적들
제5장 결 론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제1장 서 론
지금껏 학교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워왔었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타 지 역에 비해 역사와 관련된 사실을 많이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대구에서 나타나 는 일제잔재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사실 대구를 선정하면서도 지난 20년간 살아왔던 곳 을 내가 모를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평소에 지인들과 대화할 때나 역사관련 수업을 들어도 대구 일제잔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 때 대구에서도 일본인들이 주도하여 기존 한국 문화를 그들의 문화로 바꾸고 한국인들에게 강요했었다. 이 후 일본에게 주권을 되찾아 오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일제잔재를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곳곳에 숨어있는 일제잔재를 살펴보려면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전에 우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나타나는 일제잔재들이 어떤 것이 있는 지 살 펴보아야 할 것이다.
<중 략>
경북대병원 본관
대구에 남은 일제 강점기 때 건물 중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크다. 이 건물은 1933년 경북대학교 병원의 전신인 경북도립병원이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로 바뀌어 개교하면서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한국 근대 의학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며 건축사적, 교육사적으 로 가치가 높다.
산업은행 대구지점
1931년 지어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이었다. 조선식산은행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기구였으며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정책금융기관이지만 건물 만큼은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일본식 가옥, 학교
중구 삼덕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 행정기관들의 관사와 사택이 밀집되어 있었다. 2, 3층 규모의 근대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관사는 개인 주거용으로 많이 활용되어 아직 1천여 채나 남아있다. 전통양식과는 다른 2층 목조가옥이나 다락, 창고가 있는 복층 구조의 관사들은 적의 재산이라는 뜻의 '적산가옥(敵産家屋)'으로도 불린다. 중구 남산1동 대구향교 인근의 육군관사와 삼덕동 일대 옛 공무원 관사 20여 채, 부자상인 사택 등 곳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1943년 지어진 대구삼립정공립보통학교(현 삼덕초교) 교장 관사는 약간의 수리를 거쳐 현재 YMCA 미술관인 빛살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 자료
걷는 즐거움 대구생활사가이드북 대구 신(新)택리지, 북랜드, 2007.03.27
달구벌의 맥, 대구직할시 중구, 1990
대구 물어, 손필헌역
걷는 즐거움 대구생활사가이드북 대구 신 택리지 (대구의 재발견), 북랜드, 2007.03.27.
[대구, 경북 근대화 루트를 가다] 근대화의 애환 – 달성공원, 영남일보, 2008,09,03
"일제잔재 다시 보고 민족운동 바로 알자", 매일신문, 2007.02.28.
[20세기의 추억] ④대구의 일본식 가옥, 매일신문, 2007.01.26.
대구의 재발견 – 대구 신 택리지, 네이버카페, 2007.07.23
‘달성공원’, 두산백과, doopedia, 2013.05.23
‘달성공원’, 위키 백과, 위키피디아, 2013.05.23
‘잔재’,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201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