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1945년 한국영화사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3.12.28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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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897년 ~ 1945년사이의 한국영화사를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활동사진의 상영과 한국영화의 등장
2. 무성영화의 전성기
3. 발성영화시대
본문내용
<황성신문>에 게재된 활동사진 관람 광고를 근거로 보면 우리나라에 활동사진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03년 여름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근거 자료와 증언, 일본과의 통상 관계 및 지정학적인 특수 상황을 고려해보면 1903년 이전인 1897년~1898년에 활동사진이 들어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사진이 움직인 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나, 곧 짧고 단순한 내용 때문에 관객들은 좀 더 발전된 볼거리를 요구했다. 그래서 트릭의 요소가 있는 꾸며진 이야기의 영화가 조르주 멜리에스, 데이비드 그리피스 등의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대중들에게 점점 선보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연쇄극을 활동사진 제작의 기점으로 삼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가부키좌의 공연장면을 찍은 <단풍놀이>(1899) 등 몇 편의 필름작품을 연쇄극보다 먼저 공개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연쇄극은 연극 공연에 영화 장면 일부를 삽입한 변형된 연극 형식 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활동사진 연쇄극은 1919년에 단성사의 사장 박승필이 제작한 <의리적 구토>이다. 제목이 <의리적 구투>라는 주장도 팽팽하다. <의리적 구토>는 8막 28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활극조의 신파 연쇄극이다. 이 연쇄극은 1910년대 연극계에 성행하던 신파극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때 당시 좌석은 4등급으로 나뉘어 졌는데 가장 싼 3등급은 설렁탕 4그릇 값에 해당하는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성황을 이루었다.
김도산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으며 일본인 미야가와 소오노수케가 촬영과 편집을 맡았다. 김도산, 이경환, 윤화, 강원형, 최일, 양성현, 김영덕과 신극좌(新劇座) 단원들이 출연하였다.박승필의 자본과 신파극단 신극좌의 대표 김도산의 인력이 서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신파 연쇄극은 침체된 신파극계에 획기적인 재기를 가져다주었다.
참고 자료
<한국 영화사> 김미현 저 / 커뮤니케이션북스
[의리적구토] 네이버 백과사전
[월하의 맹서] 네이버 백과사전
[이월화] 위키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박승필] 네이버 백과사전
[조선 키네마 주식회사] 네이버 백과사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네이버 용어사전
[나운규] 네이버 백과사전
[촬영소] 네이버 백과사전
http://blog.naver.com/tekken0 Redirect=LoglogNo=30090386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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