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유신체제
- 최초 등록일
- 2013.12.30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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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정희는 특별선언을 통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등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박정희가 일본의 명치유신에 비교하여 10월 유신이라고 부른 이 조치는 5.16에 이어 박정희에 의해 저질러진 또 다른 쿠데타였다. 유신체제는 일종의 파시즘체제였다. 박정희는 물리적 폭력으로 솟아오르는 대중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저임금, 저곡가에 기초하여 경제적 위기를 돌파할 뿐만 아니라, 냉전구조의 해체라는 국제정세가 초래한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 결과 대중들의 정당한 요구는 다시 탄압받았고, 독점자본은 정권의 비호 하에 더욱 비대해졌으며, 반공이데올로기는 강화되었다. 유신체제 하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다. 박정희 1인의 통치만 있을 뿐이었다. 유신체제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도전은 학생들로부터 나왔다. 국민 모두가 유신의 칼날 아래 숨죽이며 살고 있던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유신헌법의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는 가운데 12월 24일에는 장준하, 백기완 등이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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