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극의 기원, 산대희 기원설, 제의기원설, 판소리 유파와 명창
- 최초 등록일
- 2014.01.01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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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산대희 기원설과 산악, 백희 기원설
2)기악 기원설
3)제의 기원설
4)실제적 목적 기원설
5)판소리의 유파와 명칭
본문내용
산대희 기원설과 산악,백희 기원설은 동일한 연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하지만 산대희 기원설은 한국적인 시각에서 가면극의 역사를 고찰하는 반면 산악백희기원설은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한국 가면극의 역사를 고찰한다. 산대희기원설은 일종의 가설무대인 산대(山臺) 위에서 베풀어진 놀이 즉, 산대희에서 산대극(山臺劇)이 생겨났고, 후에 산대극의 공연이 폐지됨에 따라 산대극의 연기자가 지방으로 흩어져 각 지방의 가면극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기원설이다.
산대희 기원설을 처음 제기한 학자는 안확이다. 그는 처용무, 나례, 산대희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또 김재철은 농사를 마치고 신을 즐겁게 하려는 무당의 의식에서 복잡한 가무가 발달하여 비로소 가무극이 발생했다고 했다. 후에 이 두사람의 주장은 송석하와 조원경에 의해 기록이 없이 증거가 없다고 반박을 당했다. 그러나 최근 <봉사도>가 발견됨으로써 산대희를 할 때 가면무용극도 연행되었음이 확인되면서 송석하와 조원경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 후 이두현은 산대희 기원설을 더욱 발전시켰다. 고대의 제의에서 연극일반의 기원을 찾고, 규식지희와 소학지희의 결합이 가면극이라는 종합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산대도감극의 가무적 측면이 규식지희의 전승이고, 연극적 측면은 광대소학지희의 희곡적 전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견해이다.
한편 1725년 완성된 <봉사도>에서는 소형의 산대 앞에서 줄타기, 접시돌리기, 땅재주, 그리고 가면을 쓴 네명의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행사에서 행해진 산대희를 묘사한 것으로 산대희에서 가면극 산대놀이가 성립되었다는 견해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