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중국의 근대화 운동
1) 양무운동 (洋務運動)
2) 변법자강(變法自彊)운동
2. 신해혁명(辛亥革命)
1) 손문의 삼민주의와 중국 동맹회
2)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성립
(1) 배경
(2) 무창 봉기
(3) 중화민국의 성립
3. 중국 근대화 실패의 원인
1) 중국인의 자연관에 따른 자연과학의 부재
2) 문화적 우월성에서의 외국에 대한 태도
Ⅲ 결 론
본문내용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달(月)과 날(日)의 숫자가 겹치는 날을 길일로 기념했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9일을 중앙절(重陽節)이라 하여 명절로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설(1월1일), 삼짇날(3월3일), 단오(5월5일), 칠석(7월7일) 등을 명절로 지냈다. 홀수를 양수(陽數)로, 양수를 길수(吉數)로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월·일이 겹치는 날에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인 1948년 9월9일을 ‘99절’이라고 하여 국경일로 삼고 있다. 대만에서는 1911년 10월10일 손문이 주도한 신해혁명을 중화민국 건국일로 삼아 ‘쌍십절(雙十節)’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수립된 변혁을 흔히 신해혁명(辛亥革命)이라고 부른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은 중국 민족 자산 계급이 주도한 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을 수립한 혁명이다. 1911년 우창 봉기로 시작되어 남경 임시 정부가 건립(1912년 1월 1일)되었다. 신해혁명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보는 관점은 전제주의적 봉건체제로부터 해방을 통하여 청조의 타도와 공화제 정부의 수립을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로 이루어진 중화민국은 이른바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라 불리는 근대 중국사회의 구조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변화를 수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신해혁명은 그 성공보다는 실패의 측면이 강조되면서 ‘실패’하거나 ‘불철저’한 혁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해혁명의 연구는 중국은 물론 일본이나 구미의 중국근대사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것은 신해혁명과 그것이 남긴 역사적 과제의 계승을 둘러싸고 각기 그 정통적인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중국과 대만 측의 경쟁이라는 ‘정치적’인 문제를 제쳐놓더라도 신해혁명 자체가 20세기 중국사회의 변동이라는 거대한 ‘혁명’의 기원 내지는 출발점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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