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특사 민영환, 러시아 황제를 만나다 - 아관파천기 러․일 타협과 민영환 특사 -
- 최초 등록일
- 2014.01.19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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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각주와 참고문헌이 명확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머리말
1. 민영환 특사의 러시아 파견
2. 아관파천 시기 러․일 타협 ① - <웨베르-고무라 각서>
3. 민영환 특사의 대(對)러시아 교섭 ①
4. 러․일 타협 ② <로바노프 - 야마가타 의정서>
5. 민영환 특사의 대(對)러시아 교섭 ②
6. 러시아의 외교정책 - 대(對)한국
[2]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삼가 폐하에게 바라노니, 안으로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동요를 깊이 걱정하시지 말고 밖으로는 틈을 엿보는 강대국을 너무 염려하지 말아서, 여론을 살피시고 곧장 환어(還御)하시어 종사를 편안케 하고 민심을 안정시키소서.” (윤정효의 상소 중 일부 )
1896년 2월 조선 국왕은 일본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일국의 군주가 자국 내의 치외법권 지대인 외국공사관으로 망명하는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 발생 한 것이다. 이는 당시의 조선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약소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아관파천의 사후 처리는 어떻게 고종이 신변의 위협에서 벗어나 경복궁으로 돌아오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고종은 이 문제를 러시아에 의지하여 해결 하고자 했다. 아관파천 이후는 한국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대(對)러시아 접근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던 시기였던 바, 그 중 민영환의 외교가 핵심이다. 그 당시 민영환이 외교 활동은 민영환 개인의 역할만이 아니라, 한국 외교력을 모두 반영하고 있고, 당시 러시아가 보여준 반응은 러시아의 입장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에 민영환 특사의 외교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과 그리고 아관파천 시기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외교 입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민영환 특사의 러시아 파견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일간에 타협이 추진되고 있을 때 한국정부는 그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왕비의 시해와 단발령으로 위기에 휩싸였던 한국은 아관파천에 의해 일단 고비를 넘겼고, 일본인 고문관 및 친일내각의 위압 하에 기거조차 불편하였던 고종도 그제서야 겨우 안정을 회복하게 되었다. 아관파천 직후 신내각에서는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기회로 민영환 특사를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대러교섭을 추진하였다. 조선정부가 특사를 파견하였던 것은 조선이 해결해야할 당면과제였던 국왕의 환궁문제와 맞물려 있었다.
참고 자료
윤영교, 「아관파천과 주권의 침해 -韓․露․日 관계를 중심으로」,『외교』, 한국외교협회, 제15호, 1990,
이민원, 「민영환의 모스코바 외교와 『천일책(천일(天一책(策))』」,『청계사학』,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청계사학회, 제 16-17집, 2002,
이민원,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국학자료원, 2002
최문형,『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지식산업사, 2001,
[민영환 특사,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가다], KBS 역사스페셜, 2003. 03. 15 방영 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