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백제신라노래
- 최초 등록일
- 2014.01.27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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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5.2.1 고구려 노래
5.2.2 백제 노래
5.2.3 신라 노래, 이른 시기의 모습
본문내용
5.2 노래의 새로운 모습
5.2.1 고구려 노래
주로 국중 대회를 하면서 남녀나 귀천의 구별 없이 함께 어울려 춤추며 노래하는 풍습이 지속되었다. 이때 남녀나 귀천의 구별이 없다는 것은 상하층이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배 체제가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서 상층의 '나라굿'과 일반 백성의 '민간굿'이 분화되었다.
[표1]굿(제사)의 분화
<중 략>
5.2.3 신라 노래, 이른 시기의 모습
신라 '가악'의 시작은 유리왕이 기원 28년에 <도솔가>를 지어 백성을 돌보는 조처를 하자 민속이 즐겁고 편안하게 되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유리왕의 뒤를 이어 통치자들이 같은 사업을 계속해 신라악의 자산이 고구려나 백제 못지않게 되었다. 국제적 교류가 빈번하지 않은 조건에서 자체의 유산을 적극 활용하고 늘여간 것이 다른 두 나라와의 다른 점이다.
'악'이라고 한 것만이 아니고 '무', '곡', '가'라고 한 것들도 있었다. '무'는 춤이고, '곡'은 가악곡이어서 사설을 갖춘 노래인 '가'와는 구별되었다. '악'이라고 한 데는 그 셋이 함께 들어 있어 필요에 따라 '무악'이나 '가악'이라고 일컫다가 하나씩 분화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