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역사시기구분
- 최초 등록일
- 2014.02.10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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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남한의 시기구분론
2. 북한의 시기구분론
3. 계급투쟁설
4. 사회경제설
5. 논쟁의 결론
6. 제3기 : 주체사상과 시기구분론
7. 맺음말
본문내용
남한의 시기구분론
해방 후 1970년대까지
815이후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일재 잔재의 청산과 자주적인 민족통일국가의 수립과 이를 위한 민주적 개혁을 추진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던 역사학은 시련을 받게 된다. 민족적 진보적 진영에 대한 미정의 탄압과 625를 거치는 동안 막스주의 역사학자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월북하거나 납북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해방 이후 50년대까지 역사학은 여전히 식민사학의 인식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시대구분 역시 식민사학의 구분법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이 시기에 대중적 영향을 크게 미쳤던 이병도의 『국사대관』은 상대사-중세-근세-최근으로 시기구분하고있다. 최근을 기점으로는 1910년 한일합방으로 잡고있다. 이것은 미군정 당시『국사교본』의 시대구분과 동일하며, 이후 진단학회에서 편찬한 『한국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서술체계는 한국사 발전을 체계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고, 왕조별 시대구분을 시간에 따라 재편성한 정도라 식민사학의 시기구분을 벗어나지 못한 서술체계이다.
남한이 식민사학을 벗어나고 새로운 연구방법론에 입각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60년대의 4월 혁명, 63사태를 겪으면서 민족이 재발견된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고 민족사학이 복원되었으며, 일부 사회경제사적 방법론도 다시 대두되었다. 1967년 12월과 196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제사학회는 ‘한국사 시대구분 문제’를 종합 의제로 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근대부분은 1910년 이전과 식민지 시기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논의의 중심은 근대의 시점 문제였다. 유원동은 사회경제질서의 변화, 특히 상업활동과 자본축적을 근대 자본주의적 경제내용으로 파악하여 18세기 후반의 영정조대를 근대의 시점으로 제시하였다. 조기준은 한국 근대사의 시점을 개항으로 잡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 근대사를 세시기로 나누고 있다. 개항을 기점으로 한 반일투쟁엣 시작되어 동학란을 제 1차적 전환기로 하여 그 후 계몽주의 시대를 맞았고 31운동을 전환기로 하여 민중의 기반위에서 전개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