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시인 한하운의 생애와 업적
- 최초 등록일
- 2014.02.23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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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인의 삶
2. 연구지형
3. 작품세계
4. 쟁점
5.발표자 생각
6.참고문헌
본문내용
“나는 어머니보고 이제는 본 이름을 아예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운이라 불러달라고 하였다. 이제는 내 이름은 영혼도 없고 육체도 없으니 텅 빈 유령이 아닌가. 아니, 이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아득히 바라보이는 하늘에 이름도 형태도 없이 흩어져가는 덧없는 구름 같은 무존재가 아닌가.”
-한하운 「나의 슬픈 반생기」중에서-
나병 시인으로 유명한 한하운은 56년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4편의 시집을 출간하고 문예지를 통해 90여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다. 스스로 인간폐업을 선언하고 자신을 존재를 부정하게 한 자신의 천형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1. 시인의 삶
1919년 음력 3월 10일 함경남도 함주에서 한종규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다. 본명은 태영(泰永)이다. 만 6세가 되던 해, 자녀 교육에 관심이 깊었던 아버지의 결정으로 함흥으로 이주한다. 1932년 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 1937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成蹊高等學校) 2년을 수료하였다. 그 해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1943년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는 중학교 5학년 시절에 문둥병 확정 진단을 받는다. 1944년부터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근무하였으나 1945년 한센씨병(나병)의 병증이 외관상으로 드러나게 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 함흥으로 돌아와 몇 년간 칩거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고국 독립을 맞이하지만 소련군의 점령 하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전 재산을 몰수당해 생활고에 시달린다. 1946년에는 함흥 학생데모사건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바도 있다. 1947년 월남, 2년간의 유랑의 생활을 하였다. 1949년 등단 이후 1950년 3월 경기도 부평 소재 나환자 정착촌인 성혜원(成蹊園)에 들어가 자치회장에 선임됨으로써 방랑 생활을 청산한다.
참고 자료
나의 슬픈 半生記(韓何雲, 人間社, 1957)
韓何雲詩鑑賞(朴巨影 解說, 人間社, 1959)
韓國現代文學史探訪(金容誠, 玄岩社, 1984)
한하운 시의 정치시학적 연구 (최명표 현대문학이론학회 | 현대문학이론연구 2005년)
1950년대 남북한 시인 연구 : 특집논문 ; 고통의 객관화와 "인간"을 향한 희구 - 한하운의 삶과 시 (김신정한국문학연구학회 | 현대문학의 연구 1996년)
한하운 시의 색채심상과 공간상실 (조병기 한국비평문학회, 비평문학, 제11호 1997)
한하운의 시세계 (최길순 수원: 경기대 교육대학원 2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