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한 여성의 지위 변화. 친영제.남귀 여가혼
- 최초 등록일
- 2014.03.02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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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를 아우르는 여성의 지위변화에 대한 내용 보고서 작성입니다. 혼인, 재사, 제산 에 관한 3가지
소제를 가지고 조사하였으며 교수님이 까다로우셔서 시각자료등의 자료를 첨부하여 작성했던 레포트 입니다. 체점결과 당연히
A+ 받은 자료이고,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 서론
2. 혼인------------(남귀여가혼→반친영제)
1) 남귀여가혼
2) 친영제도
3) 반친영제
4) 이혼의 사유
3. 제사------(남녀윤회봉사→장자중심봉사)
1) 남녀윤회봉사
2) 장자중심봉사
3) 변화한 이유?
4. 재산-----(남녀균분상속 → 적장자중심상속)
1) 남녀균분상속
2) 적장자중심 상속 & 변화한 이유
5. 결론
본문내용
서론
고려보다 한 단계 전진한 조선 사회에서 여성사는 한걸음 퇴보하였다고 평가되어진다. 하지만 조선 전기에는 유교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아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남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재산의 상속도 남녀의 차별 없이 균등하게 이루어졌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도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지내는 윤회봉사가 보편적이었다. 또한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사위, 외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어서 굳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즉, 조선시대 여성들이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라 17세기에 이르면서 혼인제도와 가족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여성들의 지위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음이다.
여성의 지위변화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수용, 주자학의 정치이념으로의 수용, 주자가례를 사회규범으로 삼은 것 과 관련이 깊다. 또한 이러한 유교이념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사대부 계층의 솔선수범은 당연하였다. 조선 전기에 걸쳐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여성에 대한 각종 규제와 지위는 17세기에 이르며 정착되고 일반 서민에게 까지 확대된다.
아래에서는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로인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1.혼인------------(남귀여가혼→반친영제)
1 – 가 남귀여가혼
신랑이 처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녀를 낳아 성장하기까지 생활한다는 혼인 거주 규칙 을 의미한다.
남귀여가혼의 특징은 과거 고구려의 서옥제도 풍속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풍속은 고구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고려 충혜왕 4년 (1318), 원의 어사대가 와서 동녀를 구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풍속이 혼인하면 남자가 거주를 달리하고 딸은 그대로 집에 머물게 하니 이것은 진의 췌서제와 비슷하다” 라고 소를 올린 기록에서 남귀여가혼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조선전기까지 계속되었음을 조선후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후 친영제를 다루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남귀여가혼의 특징으로 사위의 처가와의 밀접한 유대관계를 들 수 있다.
참고 자료
윤혜영, 혼인과 상속제도를 통해 본 한국 중세사회의 여성의 지위 변화, 목포대학교, 2006. 12
이남희, 조선 사회의 유교화와 여성의 위상, 원광대학교, 2010
오호, 조선전기 여성의 법적 지위에 대한 연구, 부산외국어대학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