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나주 반남 고분군 소개
2. 나주 복암리 고분군 소개
3. 나주 반남 고분군의 의의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나주 반남 고분군은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과 자미산을 중심에 두고 약 40여기의 고분이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원래는 각각 다르게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2011년에 문화재청이 인접 지역에 있는 고분들을 통합하여 사적 제 513호로 재지정하면서 지금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옹관과 함께 금동관,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로서 고대 영산강유역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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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면 일대의 고분들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봉토 내에 여러 개의 항아리 모양을 한 옹관을 합장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영산강유역에서의 옹관은 처음에는 소형의 옹관이었으나 점차 그 규모가 커지면서 독특한 특징을 가진 전용옹관으로 발달하였고, 이것이 무덤의 주요한 매장시설로 채용되면서 옹관고분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점은 백제와 신라와는 다른,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으로 이 지역에 독자적인 지배층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옹관고분은 백제 지배층의 묘제였던 횡혈식 석실분이 수용되기 시작한 5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묘제이기 때문에 반남면 일대를 차지했던 국가가 목지국에서 백제로 넘어가는 것을 알 수 있으며, 5세기 후반에는 백제의 통치를 받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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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문화원 홈페이지, http://www.naju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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