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4.03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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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 골프의 시작
2. 한국의 골프코스 역사
3. 한국 골프대회의 역사
4. 한국을 빛낸 골퍼들
본문내용
1. 한국 골프의 시작
한국에 골프가 전래된 것은 1897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1880년 함경남도 원산항이 개항되면서 한국의 해관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해관 안유목산 중턱에 6홀 규모의 간이 코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훗날 시가지를 확장하면서 외인촌을 철거할 때 다락방에서 쏟아져 나온 클럽세트며, 그들 골프를 즐겼다는 내용이 구전으로 전해졌고 그때 클럽을 포장한 신문지가 1897년도 판이어서 국내 골프 도입을 그 이전으로 추정케 한다.
<중 략>
- 지방 골프코스
경성골프구락부 청량리 골프코스 이후 전국적으로 골프코스가 확산되며 골프계는 활기를 띤다. 지방 최초로 대구골프구락부가 창설되고 1923년 9홀 규모의 대구 골프코스를 개장하면서 지방에 코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평양 골프코스(1928년) 9홀은 나중에 18홀로 증설됐고, 원산 골프코스(1932년) 9홀이 각각 탄생했다.
- 한국전쟁 전 골프코스
1930년 1월 22일 유능 일대 30만평에 전장 6,160야드 18홀(파 69)의 정규코스가 아카보시(일본인) 설계로 탄생하게 된다. 제3차 세계대전이 확산되면서 국내 골프장은 비행장 농경지, 신병 훈련장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1942년 평양, 원산, 대구, 부산, 흥남 골프코스가 폐쇄됐고 1943년엔 군자리 골프코스마저 전쟁의 희생양이 됐다. 광복 후 수년간 골프코스는 방치됐다. 경작지로 이용하던 소작인들과의 마찰 등으로 풀어야 할 문제점이 산적해 골프장 재건은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연덕춘 프로의 설계로 복구됐으나 1개월만에 또다시 한국전쟁을 맞게 된다.
- 한국전쟁 후 골프코스
1950년 복구한지 한달만에 또 다시 전쟁의 재물로 농경지가 됐던 군자리 골프코스는 이순용씨에 의해 복구에 들어간다. 1953년 사단법인 서울칸트리구락부를 창설하며 1954년 전장 6,750야드 18홀(파 72) 국제 규모의 골프코스를 개장하게 된다. 그로부터 1972년 어린이대공원으로 자리를 내주기까지 18년간 군자리 골프코스는 한국 골프의 맥을 이어왔다.
참고 자료
사진으로 보는 한국 골프사(대한골프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