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건국과 주원장
- 최초 등록일
- 2014.04.10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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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紅巾軍과 朱元璋
3. 洪武帝의 統治方針
4. 洪武帝의 肅淸作業
5. 制度의 整備
6. 맺음말
본문내용
오랜 기간 동안 中國人들은 예로부터 스스로를 中華라 부르며 주변 諸 民族에 대해 自矜心을 가지고 그들을 蔑視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긍심에 걸맞게 燦爛하고 뛰어난 文化를 꽃피워, 주변 국가들에게 전파하는 동시에 그들 국가에게 지대한 影響力을 행사하였다. 그러던 中國이 혼란에 빠지면서 주변의 제민족들은 서서히 중원으로 浸透하였고, 遼와 金을 거쳐 몽고족은 元을 建國하여 중국을 支配하게 되었다. 마침내 중국인들은 그들이 그토록 輕蔑하던 이민족들에 의해 똑같이 지배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민족 왕조인 원의 지배는 원말 전국을 뒤흔든 白蓮敎系 紅巾軍의 농민반란 속에서 崩壞되었다. 이 홍건군 출신으로 漢民族 王朝를 再興시킨 것이 明 太祖였다. 태조의 治下에서 원조의 胡俗이 일소되고 한민족 문화가 高揚되었으며, 관제면에서 皇帝獨裁體制는 더욱 강화되었다. 후에 만주족이 세운 淸에 의해 한족은 또다시 이민족의 지배에 들어가지만 어쨌든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탄생시킨 것이 바로 명이었던 것이다.
1368년부터 1644년에 이르는 明代의 276년간 중국의 人口는 8,000만에서 1억 6,000만으로 두 배로 늘어갔다. 파괴적인 內戰은 거의 없었으며 교육과 철학, 문학과 예술 면에서 성취한 업적은 신사사회의 높은 문화수준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명의 交替는 그리 順坦하지 않았다. 명조 정권은 처음에는 몽골을 몰아내고 저지하기 위해서 군사화되었지만, 그 다음에는 국내의 안정을 이룩하고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遮斷하려고 노력했다. 몽골 정복자를 몰아내고 부활한 한족의 국가는 宋을 繼承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실제적으로 원대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이론적으로는 漢과 唐의 모델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명의 건국과 아울러 명을 세운 태조, 즉 주원장의 활동과 그의 정책에 대하여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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