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성대원군과 명성황후
- 최초 등록일
- 2014.04.13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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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인물소개
III. 흥성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IV.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정책
V. 두 인물에 대한 평가
VI. 결론
VIII.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론
과거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는 우리 역사의 발전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서양의 통상요구의 압력과 무력적 침략에 직면하여 쇄국과 개국의 기로에 있을 때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각각 다른 대외 정책을 취함으로써 근대국가로 도약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본 보고서에서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어떠한 정책을 취하였는지 또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하여 서술하겠다.
II. 인물 소개
1.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이하 대원군) 이하응은 조선왕조 25대 왕인 철종이 후계자 없이 죽자 대왕대비 조씨(이하 조대비) 측근과 긴밀한 접촉을 통해서 자신의 어린 둘째 아들 명복을 철종의 대를 잇는 형식으로 입적시키고 왕위 오르게 하였다. 이가 바로 제 26대 고종이다.
대원군은 서울 안동에서 남연군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세도정치가 유능한 왕족의 정계 진출을 가로막고 있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척 살아갔다. 심지어 안동 김씨 세도가에게 찾아가 금품을 구걸하고 자식의 취직을 부탁하다가 궁도령이라는 비칭을 얻기도 하였다. 훗날 철종이 후사가 없이 병약해지자 대원군은 왕위계승을 노리고, 계획을 세웠다. 풍양 조씨 집안의 조대비와 접근을 모색하여, 안동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왕실을 건사할 수 있는 인물은 자신 밖에 없다는 이미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등, 왕위를 위한 계획은 철저하게 짜기 시작했다.
당시 조대비의 입장에서도 안동 김씨의 세도에 의해 그녀의 가문이 배척만 당하여 은연중에 만회의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조대비와 대원군의 합심으로 정권회복을 도모하였다. 1863년(철종14년) 철종이 죽고 조대비에 의해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연갑수,「흥선대원군에 대한 오해와 진실」,『내일을 여는 역사』 Vol.23, (2006)
이민수,「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와 그 한계성」,『동학연구』 제11집, (2002)
강상규,「명성왕후와 대원군의 정치적 관계 연구」,『한국정치학회보』 제40집 2호, (2002)
서영희, 명성황후 재평가」, 『역사비평』 통권60호,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