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출산 전의 준비
1. 왕비의 産室廳
2. 후궁의 護産廳
3. 산실청과 호산청의 출산준비물과 한의학적 산실설치
Ⅲ. 출산 후의 한의학 처방과 풍속
1. 수유와 유모 선정 및 유아의복
2. 捲草禮
3. 洗浴과 洗胎
Ⅳ. 출산 후 所生子에 따른 후속조치
1. 원자의 출생과 후속조치
2. 대군, 공주, 왕자, 옹주의 출생과 후속조치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 왕실의 출산 풍속은 동의보감을 기본으로 함(광해군 이후의 일). 의학적 처방 이외에도 산모의 무사출산과 신생아의 만복을 기원하는 각종 기복행위가 행해졌는데, 이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이 많았던 고려의 의례와 풍속의 영향.
한편 산모의 지위, 출생아의 지위 등도 출산풍속에 영향.
본고에서는 임신을 위한 노력, 임신 후의 태교 등의 내용은 없음.(알아보는 것도 재미날 듯)
Ⅱ. 출산 전의 준비(출산에 임박했을 때의 준비를 말함)
1. 왕비의 産室廳
원칙적으로 궁중의 시어소에서 해산. 궐 안에 산실청 설치. 후궁의 경우, 선조 이전까지는 궐밖 친정에서 해산했기 때문에 특별한 기구는 설치하지 않았음(선조부터 바뀜).
<중 략>
7개월째에 음식은 육선(肉饍:고기반찬)을 피하고 아침 식전에 순두부를 먹었다. 콩으로 된 음식이 태아의 두뇌 발달에 좋다는 정설에 따랐던 것이다. 그리고 각종 채소와 김미역새우흰살 생선등 해산물이 상에 올랐다. 금기시 되었던 음식으로는 게와 문어로 게는 옆으로 걷는 습성 때문에, 문어는 뼈 없는 생물이라는 선입견으로 그리하였다 한다. 그러나 게는 잘 상할 수 있는 속성, 문어는 칼슘 섭취의 부족을 우려하였던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임신부의 특별 영양식으로는 용봉탕(잉어, 오골계, 쇠고기, 전복, 해삼이 주 재료)이 올랐다고 한다. 특히 ‘임금의 물고기’라 불리는 잉어는 왕자를 생산하려는 임신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영양식이었다.
또 이외에 임신기간 동안에는 민간에서 회자되던 태교법인 ‘칠태도’(七胎道)의 내용이 왕실에서 지켜졌다. ‘해산달에 머리를 감거나 발을 씻어서는 안 된다’, ‘모로 눕거나 엎드려서는 안 된다’는 내용 등으로 실제로 해산으로 앞둔 비빈들은 몸을 씻지 않았다고 한다.
본디 민간 출신인 왕비와 후궁들이었으므로 민간의 태교법 또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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