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60년대 후반 동인
- 최초 등록일
- 2014.04.23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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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50년대에도 소극장운동은 전후 사회의 변화에 따른 사상,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내용과 양식을 창조하기 위한 실험적 연극운동으로 일어났다. 동인제 형식을 취한 소극장운동 단체들은 현대극 창조라는 목표 아래 기성연극의 타성을 비판하고 반사실주의를 표방하였다. 이러한 소극장운동은 50년대 전반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으나 단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성적인 침체 상황에 놓여있던 연극계의 현실적 조건에서 기인한 것인데, 특히 무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연극은 좀처럼 활성화될 수 없었다. 1956년, 제작극회의 창립 이후 많은 소극장운동 단체들이 발족했으나 한두 편의 공연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58년 12월에 원각사가 개관하면서 명맥만을 이어오던 소극장운동은 유례없이 활성화되었다. 원각사가 무료로 대관하였던 데다가 소극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각사는 연극전용극장은 아니었지만 소극장운동 단체들의 공연장으로서, 실험장으로서 크게 기여하였다. 원각사에서야 비로소 한국의 소극장운동은 무대적 실험으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전후의 극계는 1955년을 기점으로 하여 많은 신진 극작가들이 등장하였으나 침체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전후의 시대적 상황 자체에서 비롯되는 물질적?정신적 불안은 열악한 연극환경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중은 전후의 상처와 불안의식을 잠시라도 위로 받기 위해 극장을 찾았으므로 진지한 예술보다는 영화나 대중극을 선호했다.
그러나 대중극도 50년대 후반에는 대중의 인기를 잃고 쇠퇴하게 되었다. 대중극의 안이한 공연방식에 흥미를 잃은 대중들의 기호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영화상영관에서 공연했던 대중극은 상업적 이익을 우선하는 극장측의 입장 때문에 예술적 발전을 꾀하기가 어려웠던 데다가 영화에 밀려 무대마저 잃었다.
참고 자료
유민영, 한국 현대 희곡사, 홍성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