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왕국, 성서고고학
- 최초 등록일
- 2014.04.30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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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히스기야
3. 므낫세
4. 아몬
5. 요시야
6.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7. 시드기야
8.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주전 722년,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유다는 살아남았지만, 북쪽으로부터 오는 압력을 막아주던 이스라엘을 상실하고 말았다. 유다는 앗수르가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후에도 남아,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했던 아하스 왕이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진 뒤에도 6년을 더 다스렸다. 아하스는 그의 통치 말기 동안에 적어도 외견 상으로는 앗수르를 추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블레셋 족속에 대해 지배력을 발휘할 자유는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해는 아하스가 죽었을 때 블레셋 족속이 기뻐하자 이사야가 그들을 보고 기뻐하기는 이르다고 경고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사 14:28-31).
2.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25세에 아버지 아하스 왕을 대신하여 유다 왕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즉위하자마자 성전 문을 다시 열었다. 또한 성전을 정결하게 하며, 백성들로 가득하게 하여 다시 봉헌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희생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예식은 다윗과 다른 사람들이 초기에 확립한 절차에 따라 신중히 거행되었다(대하 29:25-30). 히스기야 왕이 우상숭배를 하던 아버지(아하스)와 달리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게 되었는지 언급은 없지만, 그 당시에 정치 상황이 젊은 왕에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지니시는 것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주었을 수도 있다(대하 29:6-11).
히스기야의 개혁은 계속되었다. 비록 종교력 상으로는 늦은 때이지만 유월절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앗수르 포로 생활을 면한 북왕국의 백성들에게도 유월절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대하 30:1-9). 하나님을 경배하던 자리로 돌아오라는 호소가 점령된 이스라엘에서는 혼합된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유다에서는 진심으로 받아들여져 대규모 집회가 형성되었다.
무교절과 유월절을 완전히 지키고 난 후에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에 형성된 신앙의 열정으로 인해 우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 지역에 있는 산당과 단을 제거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