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통치와 성전 건축, 성서고고학
- 최초 등록일
- 2014.04.30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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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솔로몬 왕
2. 솔로모의 내치
3. 솔로몬의 외치
본문내용
솔로몬 왕
다윗의 계승자
다윗이 솔로몬을 차기 통치자로 임명했지만 그가 늙고 병들자 살아있는 중에서 가장 큰 아들인 아도니야가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기로 결심했다. 아도니야는 예루살렘 남쪽 성벽 바로 밖에 있는 에느로겔에 잔치를 열고 자기편인 두 사람(군대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다른 사람들을 초청했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솔로몬, 사독(아비아달에 이어 두 번째로 여겨지던 대제사장), 선지자 나단, 브나야(다윗의 외국 용병대장)는 초청에서 제외시켰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나아가 밧세바 자신과 솔로몬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단과 밧세바는 서둘러서 다윗에게 나아가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다윗은 사태의 위급함을 깨닫고 즉시 솔로몬을 왕으로 기름부으라고 명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그를 지지하는 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기혼 샘으로 가서 제사장 사독에게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왕상 1: 38-40) 아도니야가 베푼 잔치는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잔치에 참석한 인물들은 즉시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깨닫고는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갔다” 아도니야는 당황한 나머지 다윗이 예루살렘에 지은 제단의 뿔있는 곳으로 피신했다. 그 제단은 피난 장소로 여겨져 왔다(출 21 :14). 그것은 마치 모세가 정한 도피성과 같았다. 아도니야는 제단 뿔을 잡고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을 간청했다. 솔로몬이 그를 용서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20세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한 아내와 한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었다.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에 다윗이 더 살았던 기간이 얼마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수개월에서 많게는 3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죽을 때까지 어린 솔로몬에게 왕으로서의 길과 하나님을 향해 바른 태도를 지닐 것을 조언했다 그는 솔로몬에게 담대하여, 자신을 대장부로 드러내며 하나님의 길로 걸으라고 권면했다. 마침내 다윗도 죽어 다윗(예루살렘성)성에 장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