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인의 역사편찬
- 최초 등록일
- 2014.05.21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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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대사특강'이란 수업 때 썼던 발표문입니다.
조선말기 '중인' 계층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교수님께 직접 빌린 책들을 참고문헌으로 하여 썼고 A+ 받았습니다.
도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중인계층의 신분변동과 문화·문학운동
3. '규사'의 편찬과 역사적 의의
4. '연조귀감'의 편찬과 특징
5. 나가며
6.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말기의 중인 계층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육두품(六頭品), 고려 말 조선 초의 향리층(鄕吏層)에 대비되는 계층으로 이들이 우리 역사의 전개과정 상 지배계층의 차계층(次階層)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한 계층이다. 이 계층은 고착된 신분의 벽을 깨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아 신분상승 운동을 전개하였고 사대부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조선 성리학의 내재적 극복 논리로 북학 운동을 제시하는 등, 양반 사대부들이 완고한 체질을 고수한 반면 구시대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기에 재빨리 변신하여 이미 적응력을 키워 온 계층답게 상공업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중인층의 신분변동, 그들이 주장했던 문화·문학운동과 더불어 중인층의 대표 편찬서인 '규사(葵史)'와 '연조귀감(掾曹龜鑑)'을 통하여 중인사학의 역사적 성격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중 략>
지방 서얼의 요구는 향안동록(鄕案同綠; 향안에 함께 올려 달라),과 향교에서의 서치(序齒; 나이순으로 좌석을 정하라) 문제였다. 이상의 요구에서 핵심은 동통사로(同通仕路)로서 청요직(淸要職) 감찰의 임무를 맡은 대관(臺官)과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의 임무를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 일명 대간.
으로의 허통 문제였다. 즉, 문과는 승문원(承文院), 무과는 선전청(宣傳廳)에 초임하도록 하여 양반사대부와 똑같이 벼슬길을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1세기 반에 걸친 서얼들의 줄기찬 허통 요구는 부분적으로 국가에 수용되다가 1851년(철종2) 서얼의 문과 합격자가 승문원에 분관됨으로써 통청이 실현되었다. '규사'는 이러한 서얼층의 신분상승운동이 기초가 되어 자신들의 역사를 결집하는 단계에 이른 결실이다.
참고 자료
이훈상, 『조선후기의 향리』, 일조각, 1990.
정옥자, 『조선후기 문학사상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조선후기문화운동사, 일조각, 1988.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일지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