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와 한일교류
- 최초 등록일
- 2014.06.04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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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통신사의 파견 배경
2. 통신사의 역할
3. 통신사행의 경로
4. 통신사를 둘러싼 갈등과 오해
5. 정리
본문내용
사실 세종 11년인 1429년부터 일본에 통신사는 꾸준히 파견되고 있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조일간의 교류는 사실상 모든 방면에서 중단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종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600년에 일본에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이 전쟁을 통해 새로운 집권자로 등장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원했다. 국제적으로 새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해외의 문화를 수용하고 경제적 실리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대마도 역시 조선과의 무역이 수입의 상당수를 차지했으므로 무역 재개를 애타게 희망했다.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0년 2월 사신을 보내 조선에서의 사절 파견을 요청했다. 자신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이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포로로 잡힌 조선 사람들을 송환했다.
이듬해 조선에서는 대일 관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주된 논제는 일본과의 국교가 아니라 대마도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총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혹여나 재침이 있을 시 이를 막을 수 있는 국방력이 확고히 갖춰져 있지 못하므로 조선 측에선 의도적으로 일본 중앙정부와의 통교를 회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이영, 김동철, 이근우 공저 ‘전근대한일관계사’
임형택 ‘계미통신사와 실학자들의 일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