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의 4대왕 세종의 치세동안 조선은 많은 분야에서 괄목상대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업적은 과학이 아닐까 생각된다.
농업을 국가의 근본으로 여기는 조선에서 과학은 농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상현상 관측부터, 천문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역법, 천문학 등 그 분야와 깊이가 매우 장대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서는 이제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 과학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의의를 또한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1. 머리말
2. 세종의 과학 기술 정책
2. 세종대 천문학(天文學)의 발전
3. 세종대 기상학(氣象學)의 발전
4. 맺음말
본문내용
“옛날엔 많은 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꿨었죠, 그런데 언제부터 아이들이 같은 꿈만 꾸게 된 걸까요?”, “아이돌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과학자가 더 많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문장은 최근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공익광고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광고에서처럼 필자의 어린 시절에만 해도 과학자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았으나, 언제부터인지 어린이들은 과학자를 장래희망으로 꿈꾸기보다 대중들로부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연예인과 같은 직업을 꿈꾸고 있다. 연예인이 부정적인 직업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존재는 과학자라고 생각한다.
<중 략>
세종(世宗)대 과학 기술의 유례없는 발전의 원동력의 하나는 그것을 헌신적으로 떠맡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관료 학자들과 과학자, 기술 과학자, 그리고 신분이 낮은 장인(匠人) 집단이었다. 그들은 세종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과 격려로 고무되어 보람을 느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종사할 수 있었다. 세종은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 쏟았는데, 장영실(蔣英實)의 등용 상황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장영실은 미천한 관노(官奴) 출신이었지만, 세종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상의원(尙衣院)의 별좌(別坐)에 임명하였다. 일종의 별정직과 같은 형태로 궁정 기술 과학자로서의 장영실의 지위가 보장된 것이다. 또한 세종대의 대(大)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순지는 문과에 급제한 양반 집안의 준재로 그 앞길이 보장된 관료 학자였다. 하지만 세종은 그에게 중인 계층의 학문인 산학(算學)을 연구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천문(天文)·역법(曆法)을 맡기려는 의도에서였다. 15세기 최고의 천문학자 이순지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세종의 인재등용정책은 이처럼 혁신적이었다. 과학자와 기술 과학자에 대한 파격적인 선발 및 우대로 이루어진 궁정 과학자들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세종의 뜻에 따라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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