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일본과 아시아정세
- 최초 등록일
- 2014.06.12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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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 아시아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정세 상황을 설명하는 발표문 입니다.
총 10페이제 달하는 방대한 양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목차
1. 제 1차 세계대전과 일본
2. 정당정치와 사회운동
3. 경제불황과 파시즘의 대두
4. 제 2차 세계대전
본문내용
1. 제 1차 세계대전과 일본
-다이쇼(大正)정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막대한 군비지출로 일본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1911년 성립한 제 2차 사이온지(西園寺) 내각은 긴축재정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신해혁명에 자극받은 육군은 한국에 주둔시킬 2사단의 증설을 요구하였다. 당초의 방침에 따른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육군대신 우에하라 유사쿠(上原勇作)는 단독으로 사표를 천황에게 제출하였다. 이에 후임 육군대신을 육군에서 입각시키려 하였으나 육군에서는 추천을 거부하였고 이런 상태로는 내각 조직이 불가능하기에 사이온지 내각은 결국 총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들어선 제 3차 가쓰라(桂) 내각은 천황의 권위를 빌어 정당을 억누르고 의회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비입헌적인 행동에 대해 야당 입헌국민당의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와 입헌정우회의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를 중심으로 족벌타파 · 헌정옹호를 내건 호헌 운동(護憲運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가쓰라는 헌정동지회를 조직하여 이에 대항했지만 결국 1913년 겨우 50여일 만에 퇴진하게 되는 다이쇼 정변이 발생하였다.
뒤를 이어 해군대장 야마모토 곤베에(山本?兵衛)가 내각을 조직하였다. 야마모토 내각은 재정 절약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군확장과 육군 2개 사단을 증설하려 하였고 1914년 군함구입 등 오직사건으로 민중운동의 공격을 받아 퇴진하였다. 이어서 제 2차 오쿠마(大?) 내각이 성립하였다. 오쿠마는 육군, 해군과 내각과의 조정을 꾀하여 동년 말 중의원을 해산하고 1913년의 총선거에서는 동지회 등의 여당이 정우회에 압승하여 현안의 2사단 증설안이 통과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일본
1907년 영국을 중심으로 러시아, 프랑스의 3국 협상이 성립하여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3국 동맹과 대립한다. 1914년 6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참고 자료
연민수 편저, 『일본역사』 , 보고사, 1998.
일본사학회, 『아틀라스 일본사』 , 사계절, 2011.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 , 청아출판사, 2006